英연구팀 "위험·효과 등 종합적 감안해 환자위한 선택해야"
(서울=연합뉴스) 최병국 기자 = 속칭 '밀가루약', 유효성분이 없는 가짜약(僞藥)을 먹어도 실제 약효가 나타나는 '위약(플래시보) 효과'는 약뿐만 아니라 수술이나 다른 치료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옥스퍼드대학 병원 정형외과 의사 앤디 카 교수 팀은 상당수 수술이 이런 위약효과나 다름 없음이 밝혀졌는데도 여전히 위험하고 값비싼 수술들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물론 모든 수술을 말하는 건 아니다. 사지절단수술이나 신장이식수술 같은 매우 분명하고 객관적인 결과가 나오는 수술도 있지만 응급하지 않아 분명한 진단과 다양한 치료법 등을 검토한 뒤 시간을 두고 하는 이른바 '대기(待機)수술'(elective surgery) 중 상당수가 사실상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골관절염, 척추골절 환자 뼈시멘트 주입, 비만환자 소화기에 풍선 주입, 자궁내막증 등의 여러 수술 중 일부 유형은 환자가 얻는 혜택이 '가짜수술'과 별 차이가 없다는 여러 학자의 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카 교수팀은 이번엔 어깨뼈돌기성형술에 대해 '무작위 비교 임상시험'(RCT)을 한 결과 가짜수술과 효과가 사실상 마찬가지, 즉 효과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결과를 이달 6~11일 영국에서 열린 '첼튼햄 과학축제'에서 발표했다.
이는 연골이 닳거나 기능이 저하되면 뼈끼리 마찰돼 뼈 끝 부분이 뾰족하게 되고 인대 등이 뼈에 닿아 손상과 염증, 통증을 일으키므로 어깨부위 뼈돌기를 깎아주는 게 좋다는 이론에 근거해 매우 흔히 하는 내시경 수술이다. 이 연구결과는 다음 달 학술지에 정식 등재된다.
일부 환자들이 치료 효과가 크든 작든 있다고 느끼는 건 "수술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심리적 영향이 강력하게 작용해서"라는 것은 그동안 많은 전문가의 연구에서도 확인된 것이라고 카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여러 분야 다양한 수술에 대해서도 이런 조사를 해 환자가 느끼는 치료효과가 위약효과 때문인지 확인되지 않은 수술의 경우 무신경하게 계속하는 관행을 개선, 수백만 명이 불필요한 수술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약효과를 '속임수와 가짜'라고만 생각하는 오류가 있다면서 "치료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우리 뇌의 통증 인지 관련 부위(기능)를 장악(hijack)해 강력한 심리적 효과를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외과 의사가 이를 자신들이 평생 배우고 수련하고 쌓은 숙련과 경험에 대한 모욕이라고 오해해 이를 받아들이기를 저항하고 있으며 여기엔 커다란 기득권이 게재돼 있다고 카 교수는 비판했다.
그 자신 정형외과 의사인 카 교수는 수술에도 약처럼 위약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들을 적대시하기보다는 이를 (과학으로) 이해하고 위약효과도 정상적 치료과정의 일부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효과가 없거나 돈이 많이 들고 때론 드물지만, 위험한 결과까지 초래할 수 있는 수술만 고집하기보다는 다양한 치료법을 고민하고 환자에게 수술에 위약효과가 있을 가능성을 설명하는 등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위약효과는 사실인가 = 위약효과는 제약과 의료의 모든 분야에서 이미 확립된 이론이다. 따라서 어떤 약물이 효과 있는지를 평가하는 임상시험에선 진짜 약과 위약 복용자로 그룹으로 나누어 무작위 비교 시험을 해야 한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팀은 '가짜 약'에 반응하는 뇌 부위를 찾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 반응을 관찰한 결과 가짜 약 투여 환자의 절반 이상이 우측 중전두회가 활성화되고 실제 이들이 느끼는 통증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카 교수와 공동연구자인 이렌느 트레이시 옥스퍼드대 마취학과 교수 팀이 이번 과학축제에서 진행한 프로그램 제목도 '모든 통증은 뇌에 있나'였다. 더욱이 약뿐만 아니라 수술에도 이런 위약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실제 효과가 없고 이롭기보다 해로울 수도 있으며, 고통과 경제적 부담을 가증하는 수술이 세계적으로 많이 시술되고 있다는 지적이 의료계 내부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choib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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