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12일 국회 시정연설에는 일자리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절박한 현실인식이 응축돼 있다. 문 대통령은 고용 악화와 소득 불평등의 실상을 설명하고 "실업대란을 방치하면 국가재난 수준의 경제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며 일자리 추경안의 신속한 처리를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게 정부고, 그게 국가라는 판단으로 편성한 예산"이라면서 "대응할 여력이 있는데 손을 놓고 있으면 정부의 직무유기이고, 나아가 우리 정치의 직무유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정연설에는 내용을 보완하는 파워포인트(PPT) 자료도 등장했다. 청년실업의 심각성과 고통받는 민생 실태, 추경예산 집행 내용 등을 감성적 이미지와 통계 수치로 보여주는 자료였다. 대통령이 추경예산안에 대해 시정연설을 한 것도 처음이지만 대통령 시정연설에 이런 설명자료와 도구가 쓰인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현 상황의 해법인 '좋은 일자리' 증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 같다.
일자리 추경안 자체에 반대하던 야권 기류도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여야 3당 원내대표가 추경예산안 심사에 착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날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여야 3당 원내대표 정례회동에서다. 야당은 이번 일자리 추경안이 국가재정법상 편성 요건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 부분에 대한 이견이 어느 정도 조율됐는지는 모르나 일단 추경안 심사를 시작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강경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용기 한국당 원내수석대변인은 "제1야당을 뺀 추경심사 합의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면서 "법과 원칙을 무시한 추경심사 의사일정에 합의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자당의 반대 속에 이낙연 총리 임명동의안이 표결 처리된 이후 청와대와 여당에 대립각을 세워왔고 이날 원내대표 정례회동에도 불참했다. 경위가 어찌 됐든 한국당의 이탈로 국회의 전반적 지지를 받는 추경안 처리는 어렵게 됐다.
문 대통령은 이번 추경예산안에 대해 "재난에 가까운 실업과 분배 악화 상황에 즉각 대응하기 위한 긴급 처방"이라고 성격을 규정했다. 문 대통령은 "근본적인 일자리 정책은 민간과 정부가 함께 추진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면서 하지만 "빠른 효과를 위해 공공부문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추경안이 민간부문 일자리 창출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야당이 문제 삼아온 공공부문 일자리의 한계성을 인정하고 이해를 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사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분위기가 다소 호전됐다고는 하나 추경안의 세부 심사 과정에서는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특히 공무원 1만2천 명 증원 부분에 대한 반대 기류가 강하다. 이런 경직성 비용은 추경이 아닌 본예산에 반영해야 한다는 게 주된 이유다. 청년실업, 소득 양극화 같은 구조적 문제를 추경으로 풀려고 하는 것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하여튼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로 일자리 추경안의 근본 취지와 시급성은 부족하지 않게 전달됐다고 본다. 문제는 국회 심사 과정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원안 통과에 지나치게 매달리면 자칫 전체를 그르칠 수 있다. 한국당은 이미 빠졌지만 남은 협치 구도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려면 현실을 인정하면서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고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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