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말하기 대회' 800명 방청객 환호 속 성황리 진행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언어를 공부하는 저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다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중언어, 혹은 한국과 다른 나라를 연결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죠. 그런데 이런 잠정적 인재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공부에 흥미를 잃는다고 하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아시다시피 사회의 미래는 학생들입니다. 점점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교육을 잘 받지 못한다면 노동력이 부족한 고령화 사회인 한국이 과연 계속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한국외국어대 한국문화학과에 유학 중인 베트남 출신의 응우옌훼투 씨는 단일민족과 순혈주의를 중요하게 여기며 다문화가정 자녀를 여전히 이방인 취급하는 한국의 분위기에 일침을 놓았다.
13일 오후 경희대 서울캠퍼스 크라운관에서 경희대 국제교육원과 연합뉴스 주최로 열린 '제20회 세계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는 한국에 유학 중인 참가자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대한민국'이란 주제 아래 한국 친구들을 향해 애정 어린 조언을 쏟아냈다.
거상 임상옥의 일대기를 담은 TV 드라마 '상도'를 보고 통역관의 꿈을 키우고 있다는 중국 출신의 탕양(배재대 한국어교육원) 씨는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자원봉사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 한국인들이 윤봉길 의사의 순국정신을 되새기며 서로의 벽을 넘어서 사회통합을 이뤄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모노 차림으로 단상에 오른 야마 아유미(일본·금강대) 씨는 "세월호 참사를 보며 자기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피해자와 유족들을 위해 많은 사람이 협력해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면서 "지금이야말로 이런 국민성을 제대로 발휘해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꿀 기회"라고 강조했다.
독일에서 온 린지 윌리엄스 로타(대구대) 씨는 "어른을 존경하는 문화는 좋지만 나이 어린 사람들을 무시하지 말고 의견을 솔직히 표현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몽골 출신의 안크자야(경희대 국제교육원) 씨는 "남들과 비교해 자식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보다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자식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면 든든하게 느낄 것"이라고 충고했다.
'나만 몰랐던 한국의 금기 문화'란 주제로 발표에 나선 참가자들도 다양하고 흥미로운 경험을 소개해 참가자와 방청객 모두 스스로를 돌아보고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카므란 카리모브(연세대 경영학과) 씨는 밥에 숟가락을 꽂았다가 "그건 죽은 조상에게 제사 지낼 때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로 하면 안 된다"며 제지당하고, 학생들의 명단을 빨간색 볼펜으로 썼다가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사례를 털어놓았다.
캄보디아에서 유학와 대구가톨릭대 영어과에 재학 중인 문 쏘쿤티다 씨는 이른바 '치맥'을 먹으러 갔다가 닭날개를 집어들자 함께 간 남차친구가 "한국에서는 닭날개를 먹으면 날개를 달고 멀리 날아간다는 말이 있다"며 못 먹게 한 일화를 들려줬다.
이란 샤리어티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다가 한국어를 배우러 입국한 서더트 카제미 씨는 "한국과 이란은 꺼리는 숫자가 각각 4와 13이고 이란에서는 안 먹는 돼지고기를 한국은 좋아하는 등 다른 점이 많지만 늦은 밤 손톱과 발톱을 깎지 말라는 금기는 일치한다"며 차이점과 공통점을 소개했다.
포항공대 신소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케냐 출신의 오동고 프란시스 응곰메 오켈러 씨는 밥그릇에 숟가락을 꽂았다가 혼난 일과 함께 윗사람과 술을 마실 때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마셔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따라 하다가 불판에 있는 고기가 없어질까봐 걱정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통계학을 전공하는 라이언 를츠 씨는 선풍기를 켜둔 채 잤더니 친구가 선풍기를 치운 뒤 "네 목숨을 구해줬다"고 말한 일화를 소개했다.
발표 내용 못지않게 참가자들의 옷차림이나 퍼포먼스도 관심을 끌었다. 민속의상을 차려입은 참가자도 있었고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잡버로프 쇼크루크(우송대 국제경영학 석사과정) 씨는 빅뱅 멤버 탑의 노래 '둠다다'의 한 대목을 유창한 솜씨로 들려줘 갈채를 받았다.
카므란 카리모브 씨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해 웃음을 자아냈고, 오동고 프란시스 응곰메 오켈러 씨는 '먹는 것이 남는 것' '금강산도 식후경'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역지사지' '간담상조' 등 한국 속담과 한자성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해 찬사를 끌어냈다.
객석을 가득 메운 800여 명의 방청객은 참가자들이 발표할 때마다 열띤 환호와 박수로 격려했다. 행사 중간에는 경희대 응원단과 태권도 시범단의 축하 공연이 펼쳐졌고 경품 추첨도 이뤄져 분위기를 돋웠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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