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지난 9일 tvN 예능 '알쓸신잡'에서 소설가 김영하의 입을 빌려 나온 이 말이 새삼 화제를 모았다.
'슬픔이여 안녕'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된 프랑스 여성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이 한 말로, 김영하가 자신의 소설 제목으로 차용해 유명하기도 하다. 사강은 50대에 마약 소지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도발적이고 매력적인 말이지만, 현실에서 '나를 파괴할 권리'는 곳곳에서 제약받는다. 최근 아이돌그룹 빅뱅의 탑이 대마초 흡연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충격을 안겨줬고, 얼마후 두 명의 중견 배우가 같은 혐의로 붙잡혔다.
요즘 국가는 마약만 단속하지 않는다. 흡연도 규제한다.
TV에서 흡연 장면이 사라진 지 오래다. 드라마에서 연기자들은 흡연 장면에서 담배를 손에 쥐고만 있지 불을 붙여 피우지는 않는다. TV에서 흡연 장면이 들어간 영화를 방송할 때는 해당 장면이 모자이크 처리되거나 삭제된다. 반대로 흡연의 폐해를 보여주는 공익광고가 수시로 방송되고 있다.
이처럼 내가 나 자신을 파괴할 권리를 주장할 때도 갖가지 책임론과 타인에 대한 영향, 인간의 가치판단 능력 등이 거론되며 제동을 거는데, 하물며 내가 남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
연예계가 악플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악플러를 신고하고 벌주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근절은커녕 반복, 심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스타들이 막상 악플러가 잡히면 용서와 선처를 해주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선처 없다"를 선언하는 경우가 대세다. 그만큼 악플이 더욱더 악질적으로 변하고 있다. 기획사마다 악플러 고소에 나서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인기 걸그룹 멤버를 죽이겠다는 협박 글까지 나왔다. 해당 글을 올린 누리꾼에 대해 소속사가 "선처 없이 고소, 고발 등 강경 대응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스타의 인신공격을 넘어서, 가족을 욕하고 살해 협박까지 하는 것이다.
악플러는 잡고 보면 "재미로 그랬다" "나쁜 짓인지 몰랐다"는 말을 한다. 더욱 황당한 것은 붙잡힌 악플러 중에 고학력자, 지식인층이 꽤 많다는 것이다.
신체에 위해를 가하고 상해를 입혀야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올드보이'의 처절한 복수는 세치 혀의 놀림에서 시작됐다. 혹시 설마 '파괴'라는 뜻을 모르는 걸까.
prett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