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피의자에 골프·유흥 접대받아…법원 '자정 의지 있나' 비판
검찰은 정식 공문 아닌 '수사 관련 사항' 문건으로 '조용히' 전달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건설업자로부터 수년간 향응을 받은 판사가 별다른 징계 없이 변호사로 무사히 개업해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일고 있다.
15일 대검찰청과 대법원에 따르면 부산지검은 2015년 조 전 청장의 뇌물수수 혐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지역 건설업자 정모씨가 당시 부산고법 문모 판사(지방법원 부장판사급)에게 4∼5년간 10여 차례 골프와 유흥주점 접대를 한 의혹을 파악했다.
검찰은 조 전 청장과 정씨를 불구속 기소했고 동시에 대검 고위 간부가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에게 문 판사의 의혹이 담긴 서류를 전달했다.
다만 정식 '비위 통보' 공문이 아니라 '부산지검 수사 관련 사항'이란 형태의 문건으로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향응·접대 의혹 자체도 심각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직무 연관성에 따라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있음에도 법원행정처는 소속법원장을 통해 해당 판사에게 '엄중 경고'만 했을 뿐 공식적인 징계 절차를 밟거나 진상 규명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검찰이 파악해 넘긴 내용은 당시 행정처 차장이 처장에게 보고했고 행정처장이 부산고법원장에게 전달하는 형태를 밟았다.
결국, 문 판사는 경고만 받고 법원에 머물다 올해 1월 퇴직해 무사히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가 속한 법무법인은 정씨의 변호인이 소속된 곳이다. 그는 향응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지만, 대가성은 없었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이에 법원이 업자와 유착 의혹이 있는 판사의 비위를 사실상 눈 감아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의혹이 있는데도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 등을 통해 진상 파악조차 안 한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검찰로부터 정식 공문은 아니고 '부산지검 수사 관련 사항'이라는 형태의 문건을 전달받은 바 있다"며 "이후 문 판사에 대한 입건 등 추가적인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아 사직서가 수리됐다"고 해명했다.
대검 고위 간부가 문 판사의 비위 사실이 담긴 문서를 공식 통로를 통해 대법원에 보내지 않고 행정처 한 간부에게 직접 전달한 사실을 놓고도 검찰과 법원의 조처 역시 매끄럽지 못했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온다.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됐고 사회 통념상 용인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판단했다면 법원에 그냥 넘길 게 아니라 사안을 더 들여다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판사 접대 의혹 당사자는 전 경찰청장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조사를 받는 피의자였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사실상 '이런 건이 있으니 '알아서' 잘 처리하시라'며 보내준 것 아니겠냐"며 "이런 사적인 비공식적 전달 행태 때문에 법원이 문 판사 의혹을 공식화하지 않고 조용히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불거진 전·현직 판검사들의 비리 등 법조계의 자정 능력에 의문을 던지는 사건이 잇따르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여론은 더욱 힘을 받을 전망이다.
bangh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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