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대규모 뇌물수수 의혹에 휩싸인 인도네시아 하원이, 해당 수사당국인 대통령 직속 부패척결위원회(KPK)의 수사 및 기소권을 박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빈축을 사고 있다.
15일 일간 자카르타 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하원 청문팀을 이끄는 골카르당 소속 아군 구난자르 수다르사 하원의원은 전날 취재진에 KPK의 법적 지위와 역할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KPK가 지금처럼 운영되도록 놓아둘 수는 없다. 당초 KPK는 경찰과 검찰이 법을 올바르게 집행하도록 하기 위한 제동기구가 돼야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KPK란 기관은 헌법에도 언급된 바 없다"며 KPK의 자체 수사권과 체포권, 기소권을 박탈하고 검경의 부패 관련 수사가 적절히 이뤄지는지 감시하는 수준으로 역할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 하원은 KPK가 이른바 전자신분증(E-ID) 사업 비리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자, 견제하는 행보를 보여오다가 이참에 수사권 박탈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11∼2012년 5조9천억 루피아(약 5천억원)를 들여 전자신분증 도입 사업을 추진했으나 그 과정에서 해당 예산의 3분의 1이 넘는 2조3천억 루피아(약 2천억원)가 유용된 것으로 보고 조사를 벌여왔다.
재판에 회부된 피고들은 세트야 노반토 하원의장을 비롯 여야 정치인 37명에게 뇌물을 줬다고 밝혀, 의원들을 상대로 한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KPK는 최근 노반토 의장을 출국금지 조치했으나, 인도네시아 하원이 KPK 당국자들을 청문회에 회부하겠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지난 4월 11일에는 KPK의 전자신분증 사업 비리 수사 태스크포스 팀장인 노벨 바스웨단이 염산 테러를 당해 시력상실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2007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당시 대통령의 사돈 등 정·재계 거물을 잇달아 체포한 안타사리 아즈하르 전 KPK 위원장이 살인교사 누명을 쓰고 투옥되는 등 끊임없이 정치적 보복과 견제를 받고 있다.
KPK는 2003년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립돼 집권당 총재와 헌법재판소장, 하원의장에 이르기까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벌였다.
KPK의 이런 거침없는 행보는 현지 검경이 유력인사의 부패사건 수사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 온 것과 대비됐던 탓에 인도네시아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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