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1사단' 참전용사 토머스 퀸…"17년전 韓정부 감사서한 한통에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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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피쿼<미국 뉴욕주>=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한국전쟁은 어쩌면 미국인들에게는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입니다. 그 현실이 슬플 뿐입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한국전쟁 발발 67주년을 앞둔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자택에서 만난 한국전 참전용사 토머스 퀸(85)은 섭섭한 마음부터 털어놨다. 미국에서는 한국전을 되새기는 사회적 노력이 미약하다는 한탄이다.
퀸은 "때마다 굵직굵직한 행사가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전에 비하면, 한국전쟁 참전용사 행사는 초라하다"며 "요즘 미국의 젊은 세대들이 한국전쟁의 의미, 미국의 역할을 아예 모를까 걱정"이라고도 했다.
미군이 아직 발을 빼지 못하고 있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70년 가까운 시일이 흐르면 비슷해지지 않겠느냐고도 반문했다.
그런 사회 분위기 탓이었을까. 1952~1953년 미 해병대 1사단 소속 기관총 병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그에게도 한국전쟁은 한동안 '잊혀진 전쟁'이었다.
"모든 전쟁이란 게 그렇겠지만, 한국전쟁은 그저 처참했습니다. 어쩌면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겁니다"
잊혀진 기억들을 하나둘씩 꺼내게 된 것은, 이미 세상을 떠난 모친 덕분이었다고 한다.
모친은 전장에서 날라온 수백 통의 편지, 당시 전시 상황을 보도한 신문기사, 아들의 참전 서류들을 꼼꼼하게 정리해뒀다.
"20여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벽장 속에서 굵직한 서류 집 대여섯 권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저 역시 의식적으로 지우려 했던 한국전행 기록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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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8세의 퀸이 한국전에 참전한 것은 만 18세였다. 12학년(한국의 고3) 학업을 채 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 거주지였던 뉴욕시 퀸스 리지우드 지역에서만 고교 친구 30여 명이 함께 자원입대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로 애국주의가 들끓던 분위기와도 무관치는 않았다고 회고했다.
"공산주의를 막는 게 옳은 일이라는 생각에 자원입대를 결심했죠. 맨해튼 다운타운의 시청 청사에 가니 이미 또래들이 병과별로 길게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해군과 해병대가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고 그저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에 해병대 쪽에 줄을 섰으니…그때 분위기가 딱 그랬습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패리스섬의 해병대 신병훈련소로 소집됐다. 입대 신청 사흘만이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훈련을 거쳐 강원도 속초에 상륙했다.
한국의 첫인상은 시쳇더미와 추위, 두 가지였다고 한다. 생전 처음 보는 시체에 정신이 아득해졌고, 선임이 건넨 '버번위스키'를 마신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한반도 중허리를 '동'에서 '서'로 가로 지으며 '후크(hook) 고지' 전투, '벙커힐' 전투 등을 치렀다.
"TV에서 한국의 발전상을 접할 때마다 감탄스럽고, 그때의 노력을 헛되지 않게 만들어준 한국인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자, 한국전 발발 50주년째인 지난 2000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전달받은 감사 서한을 들어 보였다. 벌써 17년 전에 날라온 한 통의 우편이었지만,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인정받은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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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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