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주도 역내 인프라개발 참여하며 아시아내 위상 강화 의지 표명
'한반도 평화' 중요성 강조…"남북 철도 연결돼야 일대일로도 완성"
中 체면 세워주며 남북관계 역할 주문…'사드 달래기' 시각도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국제행사 무대에 처음으로 데뷔했다.
제주도에서 열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2차 연차총회에서 주최국의 대통령으로서 축사를 한 것이다. 취임 38일만이다.
문 대통령의 이날 AIIB 행사 참석은 그 자체로 새 정부의 외교정책 방향과 대(對) 아시아 전략에 있어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크게 볼 때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역내의 역학질서 속에서 한국의 존재감을 확실히 과시하고 역내 경제개발 과정에서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미·중·일·러 4강국 위주의 기존 외교에서 벗어나 우리 외교의 지평을 넓히고 다원화한 협력외교를 추진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지론과 상통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박원순 서울시장을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특사로, 정동채 전 문화부 장관을 인도·호주 특사로 파견한 바 있다.
주목할 점은 AIIB가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건설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 주도로 설립된 기구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미국 중심의 기존 국제 금융질서에 대항해 자국 주도의 '새 판'을 짜겠다는 중국의 야심 찬 의지가 투영돼있다는 얘기다.
특히 출범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외교적 딜레마를 겪은 바 있다. 동맹인 미국이 사실상 반대에 가까운 불편한 반응을 보이면서 우리 정부는 8개월간에 걸친 '장고' 끝에 2015년 AIIB 가입을 결정했다. 역내 대국으로서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국과 적절한 수준에서 협력하고 가야 한다는 '실리적 관점'이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이 AIIB 2차 연차총회를 주최하고 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것은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 질서 흐름에 호응해주면서도 앞으로 역내 인프라 개발 과정에서 한국이 핵심적 역할을 맡아 경제적 기회를 창출해나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축사에서 AIIB가 명실상부한 아시아 역내 다자개발기구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하며 중국 정부의 노력을 '평가'해줬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출범한 AIIB는 일 년 반의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며 "57개국이던 회원국이 역외회원국을 포함 77개국으로 확대됐고 개도국의 16개 프로젝트에 25억불 규모의 융자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AIIB 출범을 주도한 중국정부와 AIIB의 안정적인 출발에 크게 기여한 진리췬 총재의 부단한 노력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치하했다.
문 대통령은 또 중국이 AIIB와 함께 새로운 세계질서의 양대 축으로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신(新) 실크로드 전략'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일대(一帶)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를 뜻하며, 일로(一路)는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를 의미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강조점은 중국 주도의 AIIB가 역내 인프라 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중심고리' 역할을 하겠다는 데 놓여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은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아시아 개도국의 경제·사회 발전에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겠다"며 "개도국과 선진국을 연결하는 교량(橋梁) 국가로서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이는 '한강의 기적'을 통해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발전한 '경험'과 '노하우'를 개도국에 전수해주는 동시에 중국 등 선진국과 함께 인프라 개발과 시장 개척을 적극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인프라투자의 3대 원칙을 표명한 것은 바로 '한국만의 노하우'에 터잡고 있다. 무분별한 환경훼손을 지양하는 '지속가능한 성장'과 균형성장과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포용적 성장', 그리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인프라투자가 돼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언급이다.
또 하나 눈겨볼 점은 문 대통령이 아시아 역내 인프라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를 강조한 대목이다. 역내 최대 불안요인인 북한 리스크와 한반도 긴장이 해소되지 않고서는 아시아의 안정과 평화 구축이 어렵다고 지적하고, 이를 위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인프라 개발이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남북간 철도 연결사업을 거론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문 대통령은 "고대시대 '실크로드'가 열리니 동서가 연결되고, 시장이 열리고, 문화를 서로 나누었다"며 "아시아 대륙 극동 쪽 종착역에 한반도가 있다. 끊겨진 경의선 철도가 치유되지 않은 한반도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남과 북이 철도로 연결될 때 새로운 육상·해상 실크로드의 완전한 완성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일차적으로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일대일로 신 실크로드 전략'과 연결시키면서 중국이 남북관계 개선에 참여해줄 것을 촉구하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가 개선돼 끊어진 경의선이 복구되고, 중국의 철도망과 남북철도가 연결돼야 진정한 일대(一帶)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반도 평화가 역내 평화의 핵심 요소이고, 그것이 아시아 지역의 안정과 발전에 보탬이 된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이 중국이 절대적인 입김을 행사하는 국제기구의 총회를 국제무대 데뷔 행사로 선택한 것을 두고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문제와 연결짓는 시각도 나온다.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과 미국이 서로 '주파수'를 맞춰가고 있는 상황에서 사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중국 정부를 적절히 달래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kind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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