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 해결못하는 사회의 집단 책임" 안타까움 속 자성 목소리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일자리를 찾아 고국을 떠난 이탈리아 청년들이 유럽 타국에서 테러와 화재 등으로 목숨을 잃는 사례가 잇따르자 청년 실업을 해결못하는 이탈리아 사회의 집단 책임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7일 이탈리아 일간 코레에레 델라 세라는 지난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동시 다발 테러부터 지난 14일 영국 런던의 공공임대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에 이르기까지 최근 유럽 각지에서 벌어진 주요 테러와 재난의 희생자에 이탈리아 청년들이 다수 포함된 것을 조명했다.
2년 전 파리에서는 북부 베네치아 출신의 발레리아 솔레신(28)이 바탕클랑 극장 테러로 목숨을 잃었고, 작년 12월 독일 베를린 크리스마스 마켓을 덮친 트럭 테러에서는 중부 라퀼라 출신의 파브리치아 디 로렌초(31)가 사망했다.
이번 런던 화재 실종자 명단에는 이 아파트 23층에 거주하던 베네치아 출신 마르코 고타르디(28)와 글로리아 트레비산(27) 커플이 들어 있다.
이들 모두는 이탈리아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더 나은 일자리나 연구 기회를 찾아 타국으로 이주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솔레신은 베네치아에서 대학 졸업 후 장학금을 받고 파리1대학으로 옮겨 인구통계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고, 디 로렌초는 2013년부터 베를린에 거주하며 현지 회사에서 일하다 변을 당했다.
런던 화재에서 실종된 젊은 커플은 베네치아 건축대학을 최근 나란히 졸업한 뒤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3월 런던으로 건너가 그렌펠 타워 23층에 거주해왔다.
아파트에 불이 나자 고타르디는 베네치아에 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 화재 발생 사실을 알리며 마지막 순간까지 통화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
런던에서 돈을 벌어 형편이 어려운 가족을 돕길 원했던 트레비산은 빠져나가기 힘들다는 것을 직감한 순간 어머니에게 전화해 "엄마 안녕, 지금까지 제게 해준 모든 것에 감사해요"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이탈리아인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트레비산은 특히 화재가 나기 며칠 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곳의 전망은 정말 끝내준다"는 코멘트와 함께 아파트에서 찍은 런던 시내 전경 사진을 올리는 등 런던에서의 장밋빛 미래를 꿈꾼 정황이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베네치아 대학 동문인 두 사람이 만점 학점으로 졸업할 만큼 뛰어난 학생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에서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런던으로 이주했으나, 백만장자들이 사는 노팅힐을 마주보고 있는 저소득층용 아파트를 집어 삼킨 불길 속에서 이들의 꿈도 스러졌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 젊은이들의 운명은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 못하는 이탈리아의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며 이들의 죽음은 결국 청년 실업을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집단적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 청년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현상은 이탈리아 전체의 큰 병폐가 되고 있다"며 "대학 졸업자는 유럽 다른 나라보다 적게 벌고, 그나마 일자리도 찾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한탄했다.
실제로 이탈리아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청년 실업률이 유럽연합(EU)에서 그리스, 스페인 다음으로 높은 수치인 40% 가까이 치솟으며 고학력 청년층의 이탈이 심화되고 있다.
가톨릭 단체인 이민재단의 '세계의 이탈리아인'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이탈리아를 떠난 이민자 10만7천여 명 가운데 18∼34세의 청년층이 약 37%를 차지해 장년층이나 미성년층, 고령층를 압도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민재단은 "가장 많이 이탈리아를 떠나고 있는 연령층은 '밀레니얼 세대'로 나타났다"며 "이들은 평균 교육 수준이 높지만, 유례없는 청년 실업으로 고충을 겪고 있는 세대"라고 설명했다.
과거의 양상이 실업률이 높고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남부 거주자들이 산업이 발달한 서유럽과 미국 등으로 이주하는 형태였다면 최근 들어서는 소득과 교육 수준이 높은 롬바르디아, 베네토 주 등 북부 지방이 이민을 주도하는 것도 두드러진 현상으로 꼽힌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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