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로 불리는 '부탄'

입력 2017-07-09 08:01  

[연합이매진]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로 불리는 '부탄'

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가 들려주는 국민행복의 원천은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히말라야 산맥의 작은 나라 부탄. 인구 75만 명의 이 왕정 국가는 유엔이 정한 최빈국 48개국 중 하나다. 국내총생산(GDP)이 3천 달러도 안 돼 한국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민행복지수(GNH)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반면에 한국의 행복도는 중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개발과 성장에 매달려온 우리의 새 지향점은 어디가 돼야 할까? 부탄 전문가 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지역재단 이사장)에게서 그 진단과 해법을 들어봤다. 올해는 한-부탄 수교 30주년이다.





◇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vs '부유하지만 불행한 나라'


최근 경제민주주의가 시대적 화두로 떠올랐다.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을 해소하는 경제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고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도 더는 유지하기 힘들다는 배경에서다. 새 정부 출범으로 이 같은 흐름은 한층 절실한 소명이 된 듯하다.

"모든 게 바뀌어야 합니다. 경제 시스템도 바꾸고 정치도 바꿔야 해요. 성장 지상주의에서 벗어날 때입니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더라도 더불어 행복할 길을 찾아야지요. 내가 부탄이라는 나라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세 차례에 걸쳐 부탄에 다녀오고 저서 '부탄 행복의 비밀'(한울엠플러스)을 최근 펴낸 박 교수의 주장은 단호하다 싶을 만큼 분명했다. 성장과 효율이라는 외면 가치를 앞세워 내달려온 우리 사회가 행복과 연대라는 내면 가치에 주목하지 않을 경우 '외화내빈'의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지난 6월 15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지역재단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박 교수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부탄'을 '부유하지만 불행한 한국'과 대비시켜가며 행복 사회의 길을 제시했다.


"1인당 국민소득(GDP)이 3만 달러에 이른 우리나라는 이미 행복의 물적 토대를 충분히 갖췄다고 봅니다. 이제 필요한 건 더 많은 성장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국민행복 관점에서 새롭게 개조하는 것이지요."


박 교수는 국민 행복을 모든 정책의 최우선 가치로 삼는 부탄 정부의 '국민총행복정책'을 한국 현실에 응용하는 방안을 몇 년 전부터 연구해왔다. 2011년과 2013년에 부탄을 방문한 데 이어 2015년에는 두 달간 현지에 머물며 고위관료와 평민 등 많은 사람을 만났다.

박 교수가 부탄과 인연을 맺은 것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2010년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요청에 따라 충남발전연구원 원장을 맡으면서였다. 충남도의 새 슬로건인 '행복한 변화, 새로운 충남'을 모색하는 싱크탱크의 수장으로서 '행복'을 탐구하던 중 부탄이라는 나라에 주목한 것이다. 이후 충남발전연구원은 '국제행복콘퍼런스'를 매년 개최했고, 부탄 국민총행복위원회 총책임자인 카르마 치팀 차관과 '국민총행복'의 개념 정립자인 카르마 우라 부탄연구소 소장이 한국을 찾았다.

이 같은 박 교수의 역정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부탄을 찾았던 행보와도 겹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히말라야 트레킹 중이던 문 대통령은 '국민이 행복한 나라'인 이곳에서 체링 톱게이 총리를 만나 부탄의 국민행복지수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주제로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 "이젠 국내총생산보다 국민총행복 시대!"



멀고도 가까운 나라 부탄과 한국은 얼마나 같고 다를까?

"1970년만 해도 극빈국이라는 점에서 두 나라는 처지가 같았습니다. 1인당 GDP가 부탄 212달러, 한국 255달러로 별 차이가 없었지요. 하지만 이후 가는 길이 달랐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 성장 명목으로 모든 것을 희생토록 강요하며 유신독재를 시작하던 1972년에 부탄은 국내총생산보다 국민총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선언했지요. 그 결과 현재 1인당 GDP는 경제 성장에 올인한 한국이 열 배나 높아 완승했지만 행복, 즉 '삶의 질'에서는 부탄이 세계 최상위에 우뚝 올라섰습니다."

'국내총생산보다 국민총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부탄 정책 기조의 뿌리는 17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탄법전'은 '정부가 백성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런 정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만천하에 선언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국민총행복 국정 지표가 1970년대 초에 설정됐다. 2008년 출범한 국왕 직속의 국민총행복위원회 위원장직은 총리가 맡고 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서구 세계가 사적이며 주관적인 즐거움이나 만족에 행복의 초점을 맞춘다면 부탄 정부는 행복이 개인과 사회의 상호 연관 속에서 실현되고 개인의 행복이 타인의 행복을 증진하는 데 기여한다고 본다. 이에 따라 부탄 정부의 국민총행복정책도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데 치중한다는 것.

이와 관련해 박 교수는 'GDP 성장이 부탄에도 중요하다. 그러나 GDP는 GNH를 증진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GDP와 더불어 건강, 여가, 교육, 문화, 환경, 공동체 활력 등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는 카르마 치팀 차관의 말을 환기시켰다. GDP에 주안점을 두면 교육도 노동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해져 결국 모든 인간을 기계처럼 더 많이, 더 잘 생산하도록 만드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한다는 것이다. 문화도 상품이 되고 환경도 산업이 되는 삶은 매우 고단해지고 고통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부탄의 국민총행복정책은 크게 네 기둥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속 가능하고 공평한 사회적·경제적 발전'으로, 물질주의와 소비주의에 휩쓸리지 않는 가운데 성장과 발전이 사람들의 웰빙을 증진하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보는 거지요. 두 번째 '문화의 보전과 증진'은 공동체적 유대를 강화하고자 하며, 세 번째 기둥인 '생태계의 보전'은 환경 보존과 사회경제적 발전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합니다. 네 번째 '굿 거버넌스'는 중앙 정부든 지방 정부든 투명한 정책을 수행하고 대중의 참여를 적극 수용하는 것이지요."



◇ 국내서 치료할 수 없는 환자, 외국으로



이 같은 행복 정책에 따라 국민들은 교육, 의료, 사회적 연대 등에서 불안과 외로움 없이 안정과 연대감을 누리며 '가난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살아간다.

교육을 예로 들면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모두 공교육이 돼 전 과정이 무료다.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초중고교 공히 평균 20명 수준이고 교육의 질적 수준은 전국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남녀간교육성평등지수도 매우 높아 초등학교와 10학년까지는 여학생 수가 남학생을 능가할 정도란다.

의료비 역시 완전 무료여서 몸이 아파도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 병원과 의사가 수도권과 대도시에 몰려 있는 한국과 달리 지역별 의료 격차도 크지 않다. 부탄에서 치료할 수 없는 환자는 인도 등 외국으로 보내 치료하게 하는데 그 비용 또한 국가가 지불한다.

더 눈길을 끄는 건 사회적 유대와 안전망 확보다. 부탄 사람들에게 '남'은 거의 없고 즐거움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 문화가 팔팔하게 살아 숨 쉰다. 행복의 첫 번째 근거가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가족과 친족, 이웃 간의 공동체 의식과 연대를 든다는 것. 한국 사회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도 볼 수 있었던 전통의 미덕을 그들은 실생활에서 여전히 누리고 있다.

"행복을 보는 세 가지 시각이 있다고들 하지요.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퇴행적 시각, 남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내 행복에만 집착하는 이기적 시각, 나와 남이 함께 행복을 나누는 호혜적 시각이 그것이지요. 사회적 유대감이 급속히 해체되는 우리 사회가 두 번째라면 너와 내가 하나로 이어져 있는 부탄은 세 번째 경우라 하겠습니다. 부탄의 사회적 유대는 독특한 역사적·정치적·지리적·사회적·경제적 여건에 기초하고 있어 쉽게 무너질 것 같지 않아요."







◇ 장관 사택보다 작은 왕궁…돋보이는 검박 리더십



부탄이 이처럼 탄탄한 사회적 연대망을 구축하게 된 이면에는 검소와 겸손과 배려로 모든 국민을 평등하게 대접하고 공경하는 국왕의 소통·헌신 리더십이 있다. '국왕'이라고 하면 만인 위에 군림하는 전근대적 호칭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부탄 국왕은 이와 거리가 한참 멀다고 한다.

국민행복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제4대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 국왕은 많은 업적과 높은 지지율에도 2006년 자신이 물러나야 민주화와 분권화에 도움이 된다며 51세 젊은 나이로 결연히 권좌에서 물러났다. 자리를 승계한 제5대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국왕은 2008년 '국가는 왕보다 중요하다'며 절대군주제를 폐지하고 민주헌법을 선포했다. 이로써 부탄은 의원내각제에 기초한 입헌군주제로 전환된다.

선왕이 초석을 마련한 국민총행복정책을 계승·발전시키고 있는 5대 왕은 검소한 생활과 서민적 행보로 국민들로부터 아낌없는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정치는 총리를 비롯한 내각과 헌법기관에 맡기고 자신은 검소한 생활과 대중 눈높이의 소통으로 백성들을 만나는 것. 문 대통령이 부탄 체류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부탄의 왕들은 검박(儉朴)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5대 왕이 거처하는 왕궁은 부탄의 정부종합청사 옆에 있는 조그만 건물로 장관들의 사택보다 훨씬 작아요. 왕은 백성들과 소통하기 위해 1년에 몇 차례씩 지방을 순시하는데 왕과 왕비가 묵는 숙소 역시 상상을 초월할 만큼 소박합니다. 20시간 이상 험한 산길을 넘고 14시간 동안 비를 맞으며 찾아온 왕과 왕비를 국민들이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 "가난한 부탄에서 배울 점 많다"



박 교수는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다"는 이스털린의 역설을 상기시키며 "우리가 앞으로 '성장 제로' 혹은 '저성장 시대'를 살아야 한다면 국민소득이 세계 최상위권인 북유럽 국가보다는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부탄에서 배울 게 더 많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2000년 이후 국내총생산량과 1인당 국민소득이 2배 이상 증가했지만 국민의 삶은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피폐해졌다는 것.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양극화와 사회적 격차가 심해지고 무한경쟁 속에서 사회적 유대가 급속히 붕괴됐기 때문이다.

반면에 부탄은 국민총행복조사 결과가 보여주듯이 국민소득과 함께 국민행복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국민소득 향상과 성장 잠재력 또한 매우 큰 나라다. 따라서 부탄이 지금처럼 경제, 사회, 문화, 환경이 균형적으로 발전한다면 국민소득과 국민총행복은 꾸준히 증진될 것으로 박 교수는 전망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성장과 행복의 괴리입니다. 부탄의 국민총행복정책에서 배워 행복한 사회로 나가려면 성장만을 좇는 '경제성장 지상주의'에서 '국민총행복 증진'으로 사회 패러다임을 속히 전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경제는 무한히 성장할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따라서 경제 성장을 위해 다른 것들은 희생해도 된다는 명제는 더이상 설득력이 없어요."

박 교수는 "문재인정부가 국정철학을 성장주의에서 국민총행복으로 바꿔야 한다고 최근 제안한 바 있다"면서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부탄 국민총행복 정책을 귀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재삼 강조했다.

"그동안 성장주의는 이른바 '낙수효과'에 기대해 대기업 중심의 정책에 치중해왔지요. 새 정부가 일자리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하는 것은 '아직 행복하지 않은 사람' 중 상당수가 일자리 때문임을 고려할 때 올바른 방향이라고 하겠습니다."

충남대에서 35년간 경제발전론, 농업경제학 등을 가르쳤던 박 교수는 2004년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를 만들어갈 지역 리더를 양성키 위한 지역재단(KRFD)을 설립해 2014년부터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그래도 농촌이 희망이다' 등이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id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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