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작가 부알렘 상살 2015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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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의심만을 금하라. 나의 진리만이 유일하고 정의롭다고 거듭거듭 되풀이하라. 이 가르침을 끊임없이 머릿속에 새기고, 너희 생명과 너희 재산이 나의 것임을 잊지 말라."
최근 한국어로 번역·출간된 알제리 작가 부알렘 상살(68)의 장편소설 '2084: 세상의 종말'(아르테)은 제목부터 조지 오웰의 '1984'를 닮았다. 조지 오웰이 그린 디스토피아에서 인간의 생각과 욕망을 통제하는 주체가 전체주의 국가의 지배계층이라면 상살의 '빅 브라더'는 유일신을 모시는 신정국가 권력이다.
2084년 세워진 거대제국 아비스탄은 카불이라는 이름의 경전으로 강력히 통제되는 사회다. 주민들은 유일신 욜라와 그의 대리인 아비를 맹목적으로 믿는다. 이들은 겉으로는 평온하게 사는 듯 보인다. 그러나 아비스탄에서는 '아빌랑어'라는 하나의 언어만을 사용하며 의심과 호기심, 자유의지마저 허용되지 않는다.
카불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악이 무엇이고 선이 무엇인지 인간이 아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인간은 욜라와 아비가 그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신다는 걸 아는 것으로 족하다." 주민들이 '사상의 감옥'에서 그나마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방식의 삶을 경험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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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그 단어를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그 소리는 내면의 소리였다." 주인공 아티는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고 뜻도 모르는 '자유'라는 단어를 두려움 속에 중얼거린다. 아비스탄에서 새로운 성소가 발견되고, 아티는 자신처럼 아비스탄의 경계 바깥을 찾으며 신념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자유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은 확신이 된다.
20세기 최고의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히는 '1984'에서 영감을 받은 흔적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제국의 지배자인 아비의 초상화에 "비가예(Bigeye)가 너희를 지켜본다!"라는 낙서가 적히자 당국은 곧 그 단어를 금지한다. '비가예'라는 조어는 오늘날까지 전체주의 권력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1984'의 '빅 브라더'(Big Brother)를 연상시킨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겨냥한 이 소설은 2015년 발표 당시 국제정세와 맞물리며 화제를 모았다. 작가는 당국의 검열을 받으면서도 알제리에 거주하며 프랑스어로 글을 쓰고 있다고 한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작. 강주헌 옮김. 360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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