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태권도 남북통일 언제쯤 이뤄질까

입력 2017-06-20 07:30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태권도 남북통일 언제쯤 이뤄질까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6월 24∼30일 전북 무주에서 열리는 세계태권도연맹(W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폐막식에서 북한 단원들로 구성된 국제태권도연맹(ITF) 시범단이 솜씨를 선보인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북한 태권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 태권도계는 40여 년 전부터 남북한이 각각 주도하는 WTF와 ITF로 양분돼 있어 용어가 다르고 경기 규칙에도 차이가 있다. 분단 이후 남북한이 각각 태권도를 발전시켜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ITF를 창설하고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한 인물도 사실은 남한의 군인이던 최홍희였다.



1918년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태어난 최홍희는 일본에 유학해 공수도(당수도·가라테)를 배웠다가 해방 후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 1월 조선경비대 소위로 임관했다. 1953년 9월 제주도에서 창설된 보병 제29사단으로 부임한 뒤 남태희 중위와 한차교 하사를 사범으로 내세워 장병들에게 가라테에 우리 민족 고유의 권법을 접목한 무술을 가르쳤다. 이듬해 강원도 제3군단으로 옮겨 부대에 오도관을 설립했다. 당시 전국에는 청도관, 무덕관, 송무관 등의 무술도장이 있었는데 도장마다 가라테나 중국 쿵푸를 가르치거나 이를 응용한 무술을 당수도, 권격도 등의 이름으로 가르쳤다. 최홍희는 청도관 출신의 남태희 등과 품새를 연구하고 격파 기술을 연마했다. 1954년 9월 제1군 창설 4주년 기념식 때 남태희가 일격에 기와 13장을 격파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박수를 치며 "저건 예로부터 전해오는 택견이야. 앞으로 전 군에 보급해"라고 말했다. 최홍희는 '밟을 태'(跆)에 '주먹 권'(拳) 자를 따 '태권도'라는 명칭을 제안했고 1956년 1월 이 대통령으로부터 '태권도 우남(이승만의 호)'이라고 쓰인 친필 휘호를 받았다.




ITF 기록에 따르면 1959년 9월 3일 무술도장 대표들이 모여 대한태권도협회를 결성했고 최홍희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이와 달리 대한태권도협회 연혁에는 1961년 9월 16일 창설돼 채명신 장군이 초대 회장을 맡았다고 나와 있다). 최홍희는 1962년 6월 제6군단장(소장)으로 예편한 뒤 말레이시아 대사를 지냈다가 1965년 1월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에 다시 취임했다. 그러나 공수도와 당수도 명칭을 고집하는 관장들과의 마찰, 박정희 대통령과의 불화 등으로 1966년 불명예 퇴진했다. 그해 3월 한국, 미국, 서독, 이탈리아, 베트남 등 9개국이 참가한 ITF를 창설했다가 1972년 1월 캐나다로 망명했다. 최홍희는 자서전에서 "3선개헌에 반대해 박정희 정권과 대립했기 때문"이라고 적었으나 "말레이시아 대사 시절 공금 유용 혐의를 받았고 1971년 1월 대한태권도협회장에 취임한 김운용과의 파워 게임에서 밀렸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ITF 본부까지 캐나다로 옮긴 최홍희는 남미와 유럽 등지에 태권도를 보급하는 한편 재외동포들을 규합해 반정부 활동을 펼쳤다. 그러다 김운용의 주도로 1973년 창설된 WTF에 밀리자 그는 북한을 선택했다. 1980년 9월 시범단을 이끌고 방북한 것을 시작으로 수차례 북한을 드나들며 태권도를 보급했다. 그는 북한에 살던 친형의 도움으로 1983년 북한에서 15권짜리 '태권도 백과사전'을 출간하기도 했다.



WTF의 품새는 태극 1∼8장과 고려·금강·태백·평원·십진·지태·천권·한수·일여로 이뤄져 있다. ITF는 최홍희의 호를 따 만든 천지·단군·도산·원효·율곡·중근·퇴계·화랑·충무·광개 등 20가지 '창헌류'에 의암·연개·문무·서산의 4가지를 합친 24개의 틀(품새)을 정해놓았다. 찌르기, 앞굽이, 손날, 앞차기 등의 용어 대신 ITF는 뚫기, 걷는서기, 손칼, 앞차부수기 등을 사용한다. WTF가 머리와 몸통에 호구를 착용하고 맨발로 겨루기(맞서기)를 하는 것에 비해 ITF는 보호대 없이 장갑과 신발을 착용한다. 손으로 얼굴을 가격할 수 없어 발 위주로 공격을 펼치는 WTF와 달리 ITF에서는 주먹에 의한 얼굴 공격이 가능하다.




최홍희는 2002년 평양에서 사망했다. 그의 유언장에는 농구인 출신의 북한 스포츠 외교가 장웅을 후계자로 삼는다고 적혀 있었고, 특별총회를 거쳐 그가 ITF 총재로 선출됐다. 최홍희의 아들 최중화는 음모설을 제기하며 분파의 길을 걷는다. 최중화는 1982년 캐나다를 방문할 예정이던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려다가 북한으로 도피했으며, 2008년 대한민국으로 전향했다. 최중화가 이끌던 ITF는 2016년 4월 오창진 사무총장을 신임 총재로 선출했다. ITF 사무국 출신인 베트남계 캐나다인 트란콴도 '노 코리안'(No Korean)을 외치며 새 조직을 만들었다. 트란콴은 2010년 아이티 지진으로 사망해 아르헨티나 출신의 트라이젠버그가 뒤를 잇고 있다. WTF는 ITF의 세 그룹 가운데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이끄는 조직을 대화 상대로 인정해왔다. 이번에도 ITF의 장웅 명예총재와 리용선 총재가 시범단과 함께 무주를 찾는다,


태권도는 한류의 선봉으로 꼽힌다. 1964∼1973년 월남 파병 당시 태권도 시범단은 미군과 월남군 등이 보는 앞에서 태권도의 위력을 과시했고 그때부터 태권도 사범들이 각 대륙으로 진출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동양을 대표하는 무술은 가라테였다. 영어로 'Taekwondo'라고 적힌 간판을 내걸면 중국음식점인 줄 알고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 '코리안 가라테'라는 이름을 내세운 사례도 흔했다고 한다. 그러나 태권도의 우수성에다가 사범들의 개척정신이 더해져 태권도는 일본의 가라테를 눌렀고 전 세계 도장에서 '차렷', '경례' 등의 우리말 구령이 울려 퍼지고 있다. WTF 주도로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 정식 종목이 된 것을 계기로 태권도의 인기와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현재 전 세계의 태권도 수련자는 8천만 명을 헤아린다.



한국인이 창안해 보급한 무도이자 스포츠인 태권도가 남북한 대립의 상징처럼 돼 있는 사실이 새삼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10년 만에 북한 태권도인들이 남한에서 시범을 펼치는 것을 계기로 남북한 태권도인들이 화합해 국제 조직의 통일을 모색하고 나아가 남북한 교류 협력의 견인차로 나서기를 기대한다.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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