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서비스 거품 빠지는 일본…"이제는 손님이 왕 아니다"

입력 2017-06-19 17:16  

과잉서비스 거품 빠지는 일본…"이제는 손님이 왕 아니다"

"장시간영업으로 매출 늘리고, 장시간근로로 급여 오르는 시대 끝났다"

일본 구조변화에 서비스기업들 전환점…과잉 서비스 경쟁 접고 현실화

(서울=연합뉴스) 이춘규 기자 = 일본 최대 택배업체 야마토운수가 19일부터 배달시간 지정 서비스를 일부 없애고 10월엔 개인용 배송요금을 27년 만에 인상한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택배운전사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조치다.

19일 아사히신문과 NHK방송에 따르면 '서비스 왕국'이라던 일본에서도 손님은 더 이상 신(神)도, 왕도 아니게 됐다. 야마토운수처럼 기업들이 그간의 과잉서비스 경쟁을 접고 현실화 노선을 찾게 됐기 때문이다.

일본기업들은 과거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성장경쟁 시대를 맞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고객제일주의 정신에 따라 치열한 서비스 경쟁을 벌였고, 소비자들은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서비스를 당연하게 여겼다.




야마토운수는 일손부족에도 다른 업체와 경쟁 때문에 과잉서비스를 바로잡지 못하다가 작년 8월 노동기준감독서의 시정권고를 받고 올봄 결단을 내렸다. 과도한 서비스를 줄여 과도한 노동부담을 덜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가격 인상이나 서비스 재검토를 결정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인터넷통신판매 증가에 따른 화물량의 폭발적 증가다. 2016년 야마토가 취급한 화물은 약 19억개에 달해 10년 전보다 60% 늘었다.

다른 하나는 저임금인 운전사의 만성적인 부족이다. 저출산 고령화, 1인가구·맞벌이 급증이라는 사회상 변화로 재배달이나 야간배송이 늘어나며 운전사를 포함한 택배 현장인력의 노동환경은 가혹해졌다.

'서비스가 우선'이라는 경영이념 아래 골프택배, 쿨택배, 지정시간대 배달 등을 개발하며 일본 서비스 분야의 질을 향상시켜 왔다는 평판을 들었던 야마토운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맞은 셈이다.

일손부족과 인건비 부담은 야마토 외에도 소매나 외식업체들의 영업시간 단축을 몰고왔다.

패션빌딩 운영기업인 루미네는 4월 16점포 중 12점포의 폐점시간을 30분 당겼다.

패밀리레스토랑 로얄호스트는 1월 이후 70% 점포의 영업시간을 단축하고, 24시간 영업도 폐지했다.

일본 슈퍼마켓도 2000년 대규모소매점포법 폐지로 출점 규제가 완화된 이후로는 영업시간을 연장, 매출증가를 노리는 경쟁에 몰입해왔지만, 이젠 영업시간을 단축하는 곳이 늘고 있다.

고도성장기처럼 '오래 영업하기 때문에 많이 팔리고, 오래 일했기 때문에 급여가 오르는 시대'는 이제 아니라고 아사히는 지적했다. 장기 경기침체로 정사원을 줄여야 하는 모순의 시대다.

이에 따라 일본 소매업체들은 염가매출 경쟁도 처절할 정도이고, 그 여파는 여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베이비붐세대(1947~49년생)가 모두 정년퇴직 시기를 넘긴 것도 새로운 변수다.

일본종합연구소 야마다 히사시 조사부장은 "고품질 상품·서비스를 싸게 파는 것은 대량생산·대량소비를 상정한 개발도상국형"이라며 "택배의 저가격은 인건비를 깎아서 실현한 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매장에서는 그동안 과도할 정도의 서비스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소비자가 대부분이었다.




호세이대학 경영대학원 오가와 고스케 교수는 "소비자가 기대하는 서비스라면 적정한 돈이 지불돼야 한다. 과잉서비스가 소비자이기도 한 근로자에게 부담이라면 풍요사회라고 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아사히는 "기업들은 무리한 서비스 경쟁을 하면서 소비자를 마치 신의 위치에 올려 놓고 서비스 경쟁을 해왔다"며 "수많은 장시간노동을 교훈으로 사회구조를 다시 생각할 때"라고 지적했다.

tae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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