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서울대병원이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를 뒤늦게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한 것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망진단서의 사인을 두고 거센 논란이 일었던 지난해만 해도 수정이 힘들다는 게 서울대병원의 입장이었는데 정권이 바뀌자 병원은 입장을 뒤집고 사인을 수정했다.
지금 일고 있는 논란은 외인사를 병사로 잘못 적고, 이를 다시 수정하는 과정 전반에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겠냐는 게 핵심이다.
여기서 서울대병원의 사망진단서 작성 메커니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병원 측 설명에 따르자면 서울대병원은 주치의가 전공의에게 사망진단서를 쓰도록 하는 게 일반적이다. 다만, 사인은 주치의의 의견이 절대적이다. 이번 경우도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였던 백선하 교수가 전공의에게 사인을 병사로 해서 사망진단서를 쓰도록 지시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과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사망진단서를 쓴 당사자는 전공의이기 때문에 백 교수의 의견에 반해 사인을 바꿔도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서울대병원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백 교수는 왜 이리도 병사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 것일까?
서울대병원의 한 동료 교수는 이에 대해 백 교수가 당시 외과적, 내과적 판단이 다르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자신은 신경외과 의사로서 환자의 수술과 치료에 충실했고, 이후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중환자실 혹은 내과의 소관이라고 봤기 때문에 병사로 썼다는 추정이다.
백 교수 입장에서는 고인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기 전에 시위에 참가할 수 있을 정도의 건강한 상태였는지 여부는 판단의 기준이 아니었고, 더욱이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게 이 동료 교수의 주관적인 분석이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볼 논문이 있다.
경북대 수사과학대학원 법의간호학과 법의간호학전공 이주희씨가 2013년에 쓴 '의사의 사망진단서 작성에 대한 지식 및 경험'이라는 제목의 수사과학석사 학위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저자는 종합병원 등에 근무 중인 의사 15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거쳐 사망진단서 작성 지식과 경험 정도를 평가했다.
이 결과 의사들의 사망진단서 작성에 관한 지식은 4점 만점에 평균 2.60점으로 평가됐다. 또 사망진단서 작성과 관련된 경험은 4점 만점에 2.04점이었다. 그만큼 의사들이 사망진단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많이 써보지 않았다는 방증인 셈이다.
실제로 이 설문에서는 사망진단서 작성에 관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응답도 22.3%나 됐다.
설문 항목 중에는 백남기 농민 사건과 비슷한 내용도 있었다. '뇌경색이 있는 편마비 환자가 침상에서 떨어져 뇌출혈로 사망했다면 사망종류는 외인사이다'라는 문항이었는데, 의사들의 응답 평균점수는 3.07점이었다. 이런 경우에도 모든 의사의 판단이 외인사로 합치되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는 셈이다.
더욱이 의사들은 사망진단서 교육이 필요하고 사망진단서가 정확해져야 한다는 데 평균점수 2.92점으로 높게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본인이 발급한 사망진단서는 올바르게 작성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2.59점)이 강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자신이 작성한 사망진단서에 대해 경찰이나 동사무소, 보험회사 등으로부터 문의를 받은 경험이 적고, 정확성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서 사망진단서가 올바르게 작성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사망진단서의 정확도를 더욱 낮추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논문은 의사가 작성한 사망진단서의 정확성에 대한 피드백 및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절차 마련도 주문했다.
백선하 교수의 사망진단서 논란은 정치적 이슈만 뺀다면 이 논문의 연구결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백 교수 본인은 아직도 사망진단서가 올바르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고 있지만, 의사도 신이 아닌 이상 실수할 수 있다. 앞서 인용한 논문이 의사들에게 그런 현실이 생길 수 있음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법의학자인 서울대의대 이윤성 교수는 "사망자에게 외인이 단 5%만 있어도 외인사로 작성해야 하고, (의사도) 때로는 실수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통해 사망자의 죽음을 한 번 더 검토할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물론 백 교수의 고민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사망진단서 논란을 보면서 불현듯 기자(언론)와 의사(병원)의 처지가 비슷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2년째 기사를 써오는 동안 필자도 기사의 오류를 지적하며, 해당 기사를 고쳐달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받은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이런 요구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새삼 돌이켜보게 된다. 상황이나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수 있는 사망진단서나 기사를 쓴다면 좋겠지만,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그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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