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연 1조원 인하 효과 기대…통신사, 매출 감소 우려
시민단체 "기본료 폐지는 공약 후퇴"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채새롬 기자 = 25% 요금할인을 포함한 정부의 통신비 절감대책이 발표되자 이동통신업계는 "통신사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통신 3사는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비롯해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시민단체에서는 기본료 폐지가 단기 과제에서 제외된 것을 두고 '공약 후퇴'라는 비판이 나왔다.
◇ 기본료 폐지 대신 요금할인 확대…통신사, 효력 정지 가처분 검토
22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인하안은 25% 요금할인을 비롯해 저소득층 감면 확대, 보편 요금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다.
애초 관심을 끌었던 기본료 폐지는 업계의 반발을 고려해 일단 제외됐다.
국정기획위는 기본료 폐지는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이 제한돼 전체 가입자에게 적용되는 요금할인 확대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료가 있는 2G와 3G 가입자에 한해 기본료를 폐지할 경우 전체 가입자의 84%를 차지하는 4G(LTE) 가입자는 소외되는 까닭이다.
국정기획위 김정우 자문위원은 "기본료 폐지보다 할인율을 올리는 게 통신수요자에게 더 큰 후생 증대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통신사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그만큼 요금할인 확대가 인하 효과가 크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요금할인은 별도의 법 개정 없이 고시 개정만으로 시행이 가능하다는 점도 한몫했다.
현행 고시는 미래부 장관이 요금 결정의 자율성, 이동통신시장의 경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가로 100분의 5 범위 내에서 할인율을 가감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통신업계는 25% 요금할인으로 인해 기본료 폐지 못지않은 충격을 받은 분위기다.
통신 3사는 요금할인 인상 추진 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조사와 이통사가 나눠서 부담하는 단말 지원금과 달리 요금할인은 이통사가 전액을 부담한다. 할인율이 높아지면 지원금 대신 요금할인을 택하는 비율이 크게 늘면서 통신사의 재정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할인율이 20%에서 25%로 높아지면 국내 이동통신사들의 연간 매출이 5천억원 이상 감소할 것으로 통신업계는 추정했다.
할인율이 올라가면 요금할인으로 쏠림 현상도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절감 대책의 전체 효과가 4조원이라고 하지만 업계에는 배 이상의 충격이 있다"며 "요금할인 감면 효과 1조원을 산출할 때 현 (누적) 가입자 1천900만명을 잡았지만 추가로 늘어나는 가입자를 고려하면 업계의 매출 타격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업계는 할인율 인상이 단통법의 입법 취지에 위반된다며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요금할인이 애초 공시지원금을 받는 소비자와 차별을 막기 위해 지원금에 상응하는 혜택을 준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만큼 현행 지원금 체계에서 할인율 상향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설명이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이미 지원금의 할인 수준은 15%로 요금할인보다 낮다"라며 "요금할인율이 더 올라가면 지원금 제도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며, 단통법의 취지에 맞추려면 오히려 할인율을 낮춰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고시 개정이 미래부의 재량권 남용에 해당한다는 점도 반대 이유로 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당 고시는 시장 상황에 따라 할인율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해 이해 관계자에 따라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사실상 정부의 요금 규제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요금인하로 손해를 본 외국인 주주들이 국제소송을 벌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통신 3사 단체인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는 "논의의 기회 없이 통신비 절감 대책이 발표된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며 "향후 구체적인 사안별로 정부와 협의해 가는 과정에서 국민 부담을 경감시키면서도 통신 산업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원금을 택하는 고객이 줄면 마케팅비도 줄어 매출 감소 부담을 상쇄할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실제로 요금할인율이 12%에서 20%로 인상된 후에도 이통 3사의 영업이익은 증가세를 이어왔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소비자정의센터 국장은 "그동안 통신 3사의 이익 규모를 생각하면 요금할인 확대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방안"이라며 "자체적인 대안은 내놓지 않은 채 부담이 과중하다는 주장만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국정기획위 역시 미래부가 통신사의 비용 구성 요소를 파악하는 만큼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할인율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 기본료 폐지 제외에 '공약 후퇴' 논란
기본료 폐지가 제외된 것을 두고 시민단체에서는 공약 후퇴라는 비판이 나온다. 애초 문재인 대통령이 기본료 폐지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음에도 통신업계의 반발에 굴복했다는 지적이다.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은 "미래부가 기본료 폐지는 절대 불가라는 통신 3사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주요 공약이 폐기되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이는 명백한 공약 후퇴"라고 지적했다.
녹색소비자연대 윤문용 ICT정책국장은 "국정위의 공약 이해도가 부족해 논의가 오락가락하다 기본료 폐지가 무산됐다"라며 "중장기적으로 인하안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정기획위는 각계가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해 기본료 폐지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최민희 자문위원은 "공정거래위원회의 통신시장 구조 용역 연구가 끝난 뒤 기본료 폐지 여력이 있다고 판단하면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폐지를 계속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통신비 이슈에 매몰돼 5G 등 미래 산업을 위한 정책은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병태 카이스트(KAIST) IT경영학과 교수는 "통신사 이익이 줄어들면 5G 투자도 당연히 줄게 된다"며 "5G뿐만 아니라 지금 있는 통신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설 투자가 꾸준히 필요한데 현재와 같은 인하 정책은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okk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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