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 24년 발굴·국제학술회의 노력…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추진
(김해=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경남 김해 시가지 중심부에는 구릉처럼 낮으면서도 다소 평평한 거대한 고분군이 자리 잡고 있다.
5만6천762㎡에 걸친 이곳은 바로 옛 금관가야 지배층과 피지배층 무덤이 몰려 있던 '대성동고분군'(사적 제341호)이다.
대성동고분군은 전기 가야 성립과 전개는 물론 당시 사회 성격, 정치 구조 등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가치를 지낸다.
1990년부터 2014년까지 모두 9차례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무덤은 총 304기다.
고인돌, 독무덤(옹관묘), 널무덤(토광묘), 덧널무덤(목곽묘) 등 여러 종류가 확인됐다.
금관가야 문화와 사회상을 이해할 수 있는 유물 3천여 점이 이곳에서 쏟아졌다.
금동관과 청동항아리, 금동제허리띠, 금동제 말갖춤새(마구)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가야 지배층이 중국과 일본 등과 활발한 교역을 했음을 입증하는 운모(雲母) 장식 조각, 유리그릇 조각, 파형동기(巴形銅器) 등도 출토됐다.
이런 유물은 4세기 전후 시기 아라가야(함안군), 대가야(고령군), 신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김해시는 2003년 8월 29일 이 고분군 곁에 공립 대성동고분군박물관을 개관했다.
송원영 대성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대성동고분군이 발굴되면서 가야 문화사가 알려졌다"며 "실제 김해가 학계로부터 금관가야 옛 도시로 인정받은 것도 이 고분군 덕"이라고 평가했다.
4∼6세기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해온 일본도 대성동고분군 발굴로 입을 닫았다.
송 학예연구사는 "이 고분군에서 나온 유물이 같은 시기 일본에서 나온 유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설가 최인호(1945∼2013) 씨는 2008년 낸 '제4의 제국 가야'에서 "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고대사를 추적하면서도 항상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왜냐하면 가야는 500년 동안이나 분명히 존재했던 제4의 제국이었다"고 적었다.
그는 "가야의 역사를 복원해 4국 시대로 재구성해야만 우리 역사가 바로 설 수 있다"며 "이러한 간절한 바람이 마침내 대성동고분에서부터 새로운 역사추적의 첫발을 내딛게 했다"고 강조했다.
24년간 대성동고분군을 발굴한 김해시의 가야사 연구 활동도 빛났다.
시는 발굴작업 시작과 함께 1991년부터 중국, 일본 학자 등과 함께 가야사 국제학술회의를 시작해 올해까지 23회째 이어오고 있다.
이 국제학술회의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가야사를 공부한 사람은 안 거친 사람이 없을 정도다.
역사 학계에서는 가야를 포함한 '4국 시대' 표현도 이 학술회의에서 나온 성과물이라고 밝혔다.
시는 이러한 노력과 성과를 토대로 대성동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올리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허성곤 김해시장은 "금관가야 위상을 증명한 대성동고분군 등 지역 내 수많은 가야사 유적의 제대로 된 연구와 복원을 위해서는 가야역사문화도시 지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 시장은 "가야사는 그동안 정부 무관심과 홀대로 잊혀진 역사로 방치됐다"며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서 가야사 복원 의지를 밝힌 만큼 역사 속에 당당한 가야를 부활시키는 데 김해시도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choi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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