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전기요금 누진제 부당소송…소비자 처음 승소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주택용 전력 소비자들이 한국전력의 전기요금 누진 체계가 부당하다며 낸 민사 소송에서 처음으로 승소했다.
법원은 한전이 일반·교육·산업용과 달리 주택용 전기요금에만 누진제를 적용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인천지법 민사16부(홍기찬 부장판사)는 27일 오후 김모씨 등 전력 소비자 869명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낸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소송 참가자들은 "주택용 전기요금에만 누진제 요금이 적용돼 차별을 받고 있고 과도한 누진율에 따라 징벌적으로 폭증하는 전기요금을 납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전 측은 "사용량 350킬로와트시(kWh)에 해당하는 4단계 누진율을 적용받는 경우 비로소 총괄원가 수준의 요금을 납부하게 된다"며 "(원가 이하인) 3단계 이하 누진구간에 속하는 사용자 비율이 70%"라고 맞섰다.
그러나 재판부는 "주택용 전력에만 누진제를 도입하고 나머지 일반·교육·산업용 전력에는 누진제를 도입하지 않음으로써 주택용 전력 사용만을 적극적으로 억제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택용에만 누진제를 도입해 전기 사용을 억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전 측은 재판 과정에서 주택용 전기요금에만 누진제를 적용한 이유를 설명하라는 재판부의 요청에도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전기의 분배를 위한 요금체계가 특정 집단에 과도한 희생을 요구해 형평을 잃거나 다른 집단과 상이한 요금체계를 적용하는 데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면 사용자들에게 부당하게 불이익을 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소송 참가자 1인당 최소 4천500원에서 최대 450만원의 전기요금을 돌려받게 된다.
이날 결과는 전국적으로 한전을 상대로 진행 중인 12건의 유사 소송 중 원고 측이 처음 승소한 판결이다.
앞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서울중앙지법, 광주지법, 부산지법 등지에서 진행된 6건의 같은 소송에서는 "주택용 전기요금 약관이 약관규제법상 공정성을 잃을 정도로 무효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모두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2014년 8월부터 최근까지 이와 비슷한 소송에 참여한 소비자는 1만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판결이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소송에는 최초 1천48명이 원고로 참여했으나 도중에 179명은 소를 취하했다.
전국의 전기료 누진제 소송 12건을 모두 대리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법무법인 인강)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지금까지 패소한 판결은 모두 민사단독 재판부가 담당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된 민사합의부가 오늘 처음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며 "한전이 그동안 불공정한 약관을 통해 부당하게 징수한 요금을 반환하라는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해석했다.
애초 한전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6단계였다. 전력 사용량이 많을수록 요금 단가가 비싸지는 구조다.
처음 100kWh까지는 kWh당 전력량 요금이 60.7원이었지만, 500kWh를 초과하는 6단계에 들어서면 709.5원으로 11.7배가 뛰었다.
반면 우리나라 전기 사용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에는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아 형평성 논란이 제기됐다.
'폭탄·복불복 요금' 논란이 일자 산업통상자원부는 누진제가 만들어진 2004년 이후 12년 만인 지난해 12월 3단계로 요금 구간을 개편했다.
당시 산업부는 요금 구간 개편으로 가구당 연평균 11.6%, 여름·겨울에는 14.9%의 전기요금이 인하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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