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장 '불확실성' 제거 효과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 LG전자에 이어 삼성전자[005930]도 미국에 가전제품 공장을 짓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점점 수위를 높여가는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국내 가전업체들이 잇따라 현지 생산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州) 뉴베리 카운티에 들어설 이 공장에서 내년 초부터 세탁기를 생산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물량은 알려지지 않았다.
여기서 생산된 세탁기는 전량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시장에서 판매된다.
이 공장에선 일단 세탁기만 생산하지만 향후 비즈니스 환경 등에 따라 생산 품목이나 물량을 확대할 수도 있다는 게 삼성전자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북미 시장에 공급되는 세탁기는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의 공장에서 만들어 수출해왔다. 하지만 미국 현지 공장이 설립되면 이들 물량 대부분을 현지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대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제품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어 미국 현지 공장이 설립된다고 해서 다른 지역 공장의 생산 물량을 크게 줄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현지 공장 설립이 미국 시장 공략을 한층 더 강화하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해 미국 가전시장에서 터줏대감 격인 월풀을 제치고 처음으로 시장 점유율 1위(17.3%)에 오른 바 있다. 이번 현지 공장 설립을 주마가편의 계기로 삼는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현지 공장 설립은 트럼프 정부 이래 강화된 보호무역주의의 산물이다.
'미국 우선주의'와 일자리 창출을 표방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미국에 생산공장을 지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고, 실제 로이터 통신은 삼성의 가전공장 건설 가능성을 보도했다.
이 보도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고마워요 삼성!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요"(Thank you, @samsung! We would love to have you!)"라고 쓰면서 사실상 현지 공장 설립을 기정사실화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삼성의 미국 공장 설립은 국경세 강화 등의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통상 압박에 나선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삼성전자는 "가전 핵심시장인 미국에서 지속적인 성장 기반 마련을 위해 3년 전부터 현지 생산공장 설립을 검토해왔다"고 밝혔다.
월풀이 삼성과 LG의 세탁기 등에 대해 잇따라 반덤핑 제소를 하고, 최근에는 세이프가드 청원을 내는 등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 해법으로 공장 건립을 고민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인건비 등 각종 비용 측면뿐 아니라 이처럼 복합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고려하면 이번 현지 공장 설립은 가장 큰 가전 시장인 미국 시장을 지켜낼 전략적 한 수인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로선 자칫 미국 시장을 잃을 수도 있는 불확실성을 제거했다는 점이 이번 생산공장 설립 투자의 가장 큰 소득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생활 방식이나 주거 문화 등에 따라 지역마다 인기 제품이 제각각인 가전 시장의 특성상 해당 시장의 수요나 트렌드에 좀 더 특화되고 밀착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도 현지 공장 설립의 장점이다. 물류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투자의향서 체결 시점이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일정과 맞물리면서 대통령이 체결식에 참석할 수 있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왔지만 실제로는 성사되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국내 일자리 창출'을 주요 국정 기조로 삼은 대통령이 참석한 자리에서 해외 공장 투자의향서를 체결하는 그림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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