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산란계 몰살하며 100주 넘은 노계가 낳은 계란 급증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주부 안 모(42·경기도 고양시) 씨는 최근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산 30개들이 계란 한 판을 집에서 열어보니 깨진 계란이 2개나 섞여 있어 기분이 나빴다.
유통기한은 한 달 가까이 남아 있었지만 이전과 달리 계란 껍데기가 우둘투둘하고 적잖은 계란 껍데기 표면에 검붉은 점같은 것이 많이 박혀있어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안 씨는 29일 "껍질도 약간 지저분하고 모양도 별로 였는데 프라이를 만들려고 깨보니 껍질이 너무 얇아 쉽게 부서지고 노른자와 흰자가 힘없이 풀어져 신선한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안 씨처럼 한 판에 1만원이나 주고 산 계란의 껍데기가 너무 얇아 쉽게 깨지거나 노른자와 흰자가 탱탱하지 않고 힘없이 풀어진다는 말을 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
그동안 양계업자들은 부화 뒤 65∼80주 산란계(알 낳는 닭)가 낳은 계란을 주로 유통시켜 왔지만 지난 겨울철 사상 최악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창궐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전국을 휩쓴 AI로 국내 전체 산란계의 36%에 해당하는 2천518만 마리가 살처분되면서 계란 수급에 큰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산란계와 종계 주 수입국이던 미국과 스페인에서도 AI가 발생하면서 무너진 계란 생산기반의 조기 복원도 쉽지 않은 여건이 됐다.
한 양계업체 관계자는 "원래 산란계는 부화 후 80주가 넘으면 산란율이 뚝 떨어지기 때문에 도살해 식용으로 처리해야 하지만 지금은 산란계가 절대 부족하다 보니 100주가 넘는 노계들까지 도살하지 않고 계속 알을 낳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여건상 기존에 AI에 걸리지 않고 살아남은 산란계를 죽기 전까지 최대한 활용해 계란을 생산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생제를 먹여가며 억지로 산란을 시킨 노계가 생산한 계란은 젊고 건강한 닭이 낳은 계란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껍질이 얇아 운송 과정에서 파손되기 쉽고 깨뜨렸을 때 노른자나 흰자가 탄력이 없이 물을 탄 것처럼 묽게 퍼진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계란 유통상은 "젊고 건강한 닭이 낳은 계란은 껍질이 단단하고 선명한 갈색으로 반질반질하지만 노계가 낳은 계란은 표면이 거칠고 얇아 쉽게 깨진다"며 "난황도 탄력이 없어 깨뜨렸을 때 터지거나 퍼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는 AI 사태 장기화로 계란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적잖은 계란 생산업자들이 물건을 창고에 쟁여놓았다가 가격이 더 오른 뒤에 파는 경우가 많아 유통기한이 임박했거나 지난 계란도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최근 경기 지역에서는 유통기한이 100일이나 지난 계란을 사용해 만든 와플 반죽을 전국 30여개 매장에 납품한 업체 등 관련 법규를 위반한 계란 판매·가공업체 87곳이 특별사법경찰단에 적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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