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월차·연차에 여름 휴가까지…중기, 연차휴가도 쉽지 않아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경기도 판교의 한 중소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김 모(29) 씨는 3개월 동안 일하면서 한 번도 휴가를 내본 적이 없다.
회사는 2주에 한 번꼴로 김 씨에게 주말 출근을 요구했고, 주말에 일하게 됨에 따라 '대휴'가 발생했지만 쓸 수는 없었다.
김씨가 대휴를 쓰겠다고 하자 상사는 "얼마 전에 받은 예비군 훈련이 곧 휴가 아니냐"며 핀잔만 줬다.
아울러 김 씨는 한 달을 근무하면 연차가 하루씩 생긴다고 들었지만, 이 또한 쓰지 못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박 모(28) 씨의 휴가 사용은 김 씨와는 전혀 다르다.
박 씨는 기본적으로 월차 12일, 연차 9일의 휴가를 받는다. 여기에 여름 휴가 5일이 따로 주어진다.
이 26일의 휴가를 박 씨는 모두 쓸 수 있다. 휴일이 있으면 이어서 쓰는 것도 자유로워서 웬만한 직장인이 짧은 휴가 기간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유럽 등 장거리 지역으로의 여행도 자주 다녀온다.
이처럼 많은 근로자가 여름이 되면 휴가를 떠나지만, 휴가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차이가 존재하는 등 휴가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2일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의 '근로시간 운용 실태조사(2016년)'에 따르면 조사대상 1천570개 사업체 중 연차휴가가 없는 곳은 5.9%(92개)에 달했다.
규모별로 살펴보면 근로자 5∼29명인 사업체 중 연차휴가가 없는 곳이 13.5%에 달해 가장 많았다.
300인 이상 사업체의 경우 연차휴가가 없는 곳은 1.2%에 불과했다. 즉, 근로자 수가 적은 영세 사업체일수록 연차휴가를 주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아르바이트 직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전국 아르바이트생 925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이들 중 32.4%가 '여름 휴가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한 이유로는 가장 많은 46.6%가 '자금이 부족해 아르바이트해야 해서'라고 답했다.
아울러 조사대상의 79.8%는 '나와 다른 휴가 계획을 하는 친구에게 부러움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알바천국은 "휴가철이지만, 아르바이트 때문에 발이 묶여 자기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알바생들의 고달픈 현실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휴가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로 직원이 적은 중소기업의 현실과 아직 정착되지 못한 휴가 문화를 들었다.
장훈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소기업에서는 휴가를 가기 위해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이런 압력이 계속돼 휴가를 가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영진부터 인식이 바뀌고 유연한 기업문화가 퍼져야 한다"며 "문체부에서 실시하는 '여가친화기업 인증제도' 등이 확대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의 경우 직원이 많지 않아서 누군가 그 업무를 대신해야 하고, 따라서 직원들이 휴가 자체를 사용하기 어려워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휴가를 보장해주려는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인식개선이 필요하고 기업문화 자체도 바뀌어서 휴가를 단순히 '노는 것', '쉬는 것'이 아니라 재충전하는 준비 기간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 연구위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 노력도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중소기업 중 절반 정도가 협력업체인데 대기업이 법정 공휴일 전에 협력업체에 물량 발주를 해놓고 쉬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경우 중소기업은 법정 휴일을 반납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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