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당신은 너무합니다' 독한 노마님 역 열연…"실제로는 평화주의자예요"
KBS 공채 탤런트 1기, 연기인생 57년…"후배들 앞에서 NG 내는 건 치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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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이쯤 되면 주인공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최근에는 거의 절반가량의 장면에 등장했고, 급기야는 '엔딩요정'이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대가족이 등장하는 주말극에서 '노모' 역은 대개 회당 몇 장면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다 많이 등장해도 대사가 많지도 않다. 그런데 대사도 엄청나다.
"하루는 나 이러다 죽을 것 같더라고요. 대사도 너무 많고, 주로 싸우는 연기라 너무 힘이 들어서 머리 핏줄이 터질 것 같은 거에요. 그래도 너무 행복하죠. 이 나이에. 또 후배들이 응원해주고 우리 팀 분위기가 너무 좋으니까 그 힘으로 해내고 있습니다."
75세의 노배우 정혜선은 이렇게 말하며 인자한 미소를 환하게 지었다.
MBC TV 주말극 '당신은 너무합니다'에서 재벌가 노마님 '성경자'를 연기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그를 최근 경기도 일산 MBC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매회 고운 한복 차림으로 등장하는 그는 "한복 만들어주는 데서 정말 신경을 많이 써준다. 오늘도 '신상' 한복"이라며 '귀엽게'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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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지만 행복…분량 많아도 NG 내는 건 치욕"
'욕하면서도 계속 보는 드라마'로 설명되는 '당신은 너무합니다'에서 '성경자'는 재벌회장(전광렬 분)의 모친으로 아들 내외, 두 손자 내외를 손아귀에 쥐고 집안에서 한껏 파워를 과시하는 인물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해 먹는 '콩가루 집안'에서 성경자는 모든 인물과 부딪히면서 드라마의 갈등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주연 배우들보다도 정혜선이 더 많이 화면에 등장하게 됐다.
"초반에는 회당 몇신 안됐어요. 2~3신 정도 나오길래 아주 좋았어요. 그런데 웬걸, 점점 분량이 많아지는 거에요. 그래도 처음에는 내가 그 늘어나는 분량을 소화해내는 희열이 있었어요. 온종일 대사를 외우느라 힘들어도, 한 신 한 신 해낼 때 좋았어요. 그런데 20부 정도 지나고 나니까 아주 죽겠더라고.(웃음) 아무리 대사가 많아도 나는 후배들 앞에서 NG 내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해요. 이걸 제대로 못하면 난 이 대열에서 낙오자가 되는 거잖아요. 난 좀 다른 선배가 되고 싶어요. 힘들긴 하지만 이 나이에 이렇게 비중 있는 역할 맡는 건 배우로서 정말 행복한 거죠.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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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신은 너무합니다'의 실제 주인공은 정혜선"이라는 말이 나왔다. 얼마 전에는 장손의 결혼식이 파국으로 치닫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성경자가 거짓 졸도 연기를 펼친 코믹 엔딩이 화제를 모으면서 그는 '엔딩 요정'이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엔딩요정'이라고요? 어머나 진짜 그렇게 말해요? 너무 기분 좋네요"라며 활짝 웃은 그는 "후배들이 나를 응원하고 배려해줘서 힘들다가도 거기에 다시 힘을 낸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 전광렬 씨가 녹화장에서 후배들에게 '야 너네 다 일어나'라더니 '전부 선생님께 박수!'라는 거에요. 그때 생각하니까 눈물 나려고 하네요. 후배들이 내가 분량이 너무 많은 것을 안쓰러워해요. 성경자가 각 인물과 부딪히면서 대사가 엄청 많은데, 정작 상대방은 대사 없이 '땡땡땡'(말줄임표)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웃음) 후배들이 '선생님이 나오셔야 시청자가 재미있어한다'면서 힘을 내라고 하니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죠. 제가 성경자 속으로 들어가서 연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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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인생 57년…쉬면 안되는 줄 알고 계속 연기해와"
정혜선은 1960년 KBS 공채 1기 탤런트로 출발했다. 연기인생 57년. 그는 최근에만도 '미녀 공심이' '굿바이 미스터 블랙' '전설의 마녀' '압구정 백야' '유혹' '신의 선물' '백년의 유산' 등에 줄줄이 출연하며 칠순이 넘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내가 쉬는 걸 몰랐어요.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57년을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작품을 해왔어요. 남편 없이 산 세월이 오래됐잖아요. 30대에 이미 혼자가 됐으니 내가 가장이잖아요. 일을 안 하면 밥을 못 먹을까 봐 계속해서 일을 했어요."
숱한 히트작에 출연해온 그는 대표작을 꼽아달라는 요청에 '제3지대'와 '간난이', '아들과 딸' 등을 꼽았다.
"'제3지대'는 1966년 작품인데 연기의 '연'자도 모르던 내가 여주인공을 맡아 그 작품으로 열화와 같은 반응을 얻었어요. 드라마가 인기를 얻어 동명의 영화에도 출연했죠. 그걸 계기로 영화도 50여편 찍었어요. '홍콩에서 온 마담장'을 보면 나는 액션스타였어요.(웃음) '간난이'는 1983년도 작품인데 40대인 내가 80대 노파를 맡았죠. '아들과 딸'(1992)은 어마어마한 인기였는데, 내가 아들만 예뻐하고 딸을 구박하는 엄마여서 길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손바닥으로 날 때리기도 했어요. 얼마나 미웠으면 그랬게요.(웃음)"
그렇게 줄기차게 일했던 그는 2015년 73세가 돼서야 처음으로 1년여를 쉬었다.
"제가 1남2녀를 뒀는데 막내딸이 2015년 미국서 늦은 나이에 결혼했어요. 그래서 딸 결혼식에 맞춰 그때 처음으로 스케줄을 안 잡았고 쉬는 김에 호주 친구 집에 3개월 가 있는 등 1년 반을 쉬었어요. 제 인생에서 그렇게 쉬어 본 게 처음이었는데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너무 좋았어요. 남들은 늙으면 기내식이 입에 안 맞는다는데, 나는 기내식도 너무 맛있는 거에요.(웃음) 그렇게 쉬었던 덕분에 그 에너지로 지금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
빈민부터 재벌회장까지, 한없이 착한 인물부터 악독한 인물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분주히 오간 노배우는 '긍정 요정'이기도 했다.
"저는 불만이 없어요. 될 수 있으면 따지려고 하지 않고 순응하려고 해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성경자는 만날 소리만 지르고 싸우지만 저는 평화주의자랍니다. 소리 지르는 것도 너무 싫어해요.(웃음) '당신은 너무합니다'를 막장이라고 하지만 배우로서 저는 그런 면은 안 보려고 하고 성경자라는 인물을 이해하려고 하죠. 작가의 대본에는 다 이유가 있고 시청자의 공감을 유발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배우는 대본에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prett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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