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전 시점, 루거우차오 사건(1937년)→ 만주사변 (1931년)으로
일 학계 "피해 강조, 일 공격 카드 늘리려는 의도" 주장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옛 일본군을 상대로 한 중국의 "항일전쟁" 기간을 그동안의 8년에서 14년으로 연장하려는 중국의 역사 해석 변경이 추진되고 있다 중국은 오는 7일로 80주년을 맞는 루거우차오(盧溝橋) 사건(1937년)을 항일전쟁의 기점으로 삼아왔다. '8년 항전'은 1937년 7월 7일 베이징 루거우차오에서 빚어진 중일 양국 군의 충돌에서부터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했을 때까지를 일컫는 용어다.
루거우차오 사건 직후 장제스(蔣介石)가 "이젠 땅의 남북이나 나이의 많고 적음을 구분치 않고 모두 국토를 수호하고 항전에 나서야 할 책임이 있다"고 밝힌 것을 사실상 항일전쟁 개시 선언으로 받아들여 왔다.
그러던 중국 당국은 1931년 9월 18일 선양(瀋陽) 류탸오후(柳條湖) 부근에서 일본군이 건설 중이던 남만 철도의 폭발로 시작된 만주사변을 항일전쟁 발발 시점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기 시작했다. 6년을 거슬러 올라가 항일전쟁이 "14년간" 계속됐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이런 역사해석 변경 배경에는 5년에 한 번 열리는 당 대회를 앞두고 공산당의 권위를 높이려는 시진핑(習近平) 지도부의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3일 지적했다.
"14년간에 걸친 항일전쟁 전반부 시기에 중국은 일본에 저항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아 일본군을 저지했다"
헤이룽장(黑龍江) 성과 쓰촨(四川) 성 내 고등학교가 올해 설 이후 시작된 신학기에 사용하는 교재에는 그동안 "8년"으로 돼 있던 항일전쟁 기간이 "14년"으로 바뀌었다.
중국 교육부가 올해 초 내려보낸 지시에 따른 것이다. 교육부는 항일전쟁의 기점을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에서 1931년 류탸오후 사건으로 변경하도록 지시했다. 중국 각지의 출판사는 이에 맞춰 교과서 내용을 바꾸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월에 교과서 개정은 "중국의 항일전쟁이 세계의 반파시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정확히 배워야 한다"는 군사과학원 군사연구학자의 논문을 게재했다.
중국(당시는 중화민국)이 미·영·소 등 연합국의 승리에 공헌해 '전후 국제질서를 구축했다"(왕이 외교부장)는 메시지 발신을 겨냥한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건국 후 공식 당사(黨史)에서 항일전쟁을 "8년"으로 기술했다. 유명한 혁명가에도 그런 내용이 들어갔다. 그동안 일본과의 전면대결은 국민당과 공산당이 불화 끝에 연대해 일본에 대항하기 시작한 1937년 이후로 간주해 왔기 때문이다.
역사해석 변경의 직접 계기는 2015년 7월에 당 정치국 학습회에서 나온 시진핑 주석의 "류타오후 사건에서부터 14년간의 역사를 일관된 것으로 배워야 한다"는 발언이다.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되던 항일전쟁 기간 "14년" 주장이 시 주석의 한마디에 단번에 "공인"된 셈이다. 당 지도부의 호령에 이의를 제기하는 의견은 즉시 봉쇄됐다.
중국 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소장 출신으로 "8년"설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장하이펑(張海鵬) 은 "'14년'은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 아니다. 이 테마를 논하는 것이 터부시되는 걸 우려한다"는 평론을 인터넷에 발표했지만 금세 삭제됐다. 또 다른 연구자는 "지금의 지도부에는 이론을 제기할 수 없다. 교육현장에서 객관적인 역사의 배경을 가르치는 것도 어려워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사히(朝日)는 시진핑 주석의 중국 지도부가 역사해석변경을 계기로 대일비판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서도 일본 측에서는 "6년을 거슬러 올라간 1931년 전후에서부터 루거우차오 사건까지의 일본군에 의한 '피해'를 앞으로 더 강조할 가능성이 있고 중국이 역사문제에서 일본을 공격할 새로운 카드를 늘리려 한다"(가와시마 마코토 도쿄(東京)대학 대학원 교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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