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자체가 부적절…내가 살아온 세월에 대한 부정"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송경동(50) 시인이 미당문학상 후보를 거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상이 기리는 미당 서정주(1915∼2000)가 친일 행적은 물론 독재정권에 부역한 전력까지 있다는 이유에서다.
송 시인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 "'2017 미당문학상' 후보로 올리려 한다고 중앙일보에서 전화가 왔다"며 "3000만원짜리 문학상을 탈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데 거부했다"고 적었다.
그는 "미당의 시적 역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친일 부역과 5·18 광주학살과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전두환을 찬양하는 시를 쓰고 그 군부정권에 부역했던 이를 도리어 기리는 상 자체가 부적절하고 그 말미에라도 내 이름을 넣을 수는 없다고 했다"고 밝혔다.
송 시인은 미당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일이 "내가 살아온 세월에 대한 부정이고, 나와 함께 더불어 살아왔고, 살아가는 벗들을 부정하는 일이며, 식민지와 독재로 점철된 긴 한국의 역사 그 시기 동안 민주주의와 해방을 위해 싸우다 수없이 죽어가고, 끌려가고, 짓밟힌 무수한 이들의 아픔과 고통 그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라고 했다.
송 시인은 "내 시를 존중해 주는 눈과 마음이 있었다면 도대체 나와 '미당'이 어디에서 만날 수 있단 말인가"라며 불쾌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2001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그는 부당한 권력의 횡포를 규탄하는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온 대표적 참여시인이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희망버스' 행사를 기획했고 지난해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항의해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텐트촌의 '촌장'을 맡았다.
미당을 비롯해 친인 문인들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이나 기념사업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해 11월 '친일문인 기념 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문인 중 기념사업이 있거나 기념물이 설립된 문인은 서정주·이광수·채만식·유치진·최남선 등 15명이었다. 박한영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이들은 친일함으로써 한국 문학의 정신과 역사를 근본적으로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올해 5월에는 김혜순 시인이 5·18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가 수상을 사양했다. 김 시인이 2006년 미당문학상을 수상했고 심사위원에도 미당문학상 수상자와 심사위원이 섞여 있어 '오월정신'에 여러모로 어긋난다는 문단 일각의 비판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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