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이 실린 논문을 발표했던 1905년, 그는 유명 학자가 아닌 스위스 베른 특허국의 3등 심사관이었다. 사무실에서 특허 서류를 뒤적이는 아인슈타인의 모습은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천재 과학자의 모습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특허국 생활은 그가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는데 토양이 됐다.
유럽 철도의 중심지였던 베른의 특허국에는 철도와 시계 동기화와 관련된 특허 신청이 많았다. 철도 교통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의 시계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서류들에 둘러싸여 있던 아인슈타인은 먼 거리에 있는 두 개의 시계를 동기화하는 시계 좌표화를 통해 시간을 절대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상대성 이론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수학의 7대 난제 중 하나였던 '푸앵카레의 추측'으로 유명한 프랑스 물리학자 겸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 역시 아인슈타인처럼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위대한 발견을 이뤄낸 사례다. 푸앵카레는 1893년부터 프랑스의 경도국에서 일하며 경도를 결정하는 문제를 연구했다.
위도는 북극성의 위치에 따라 쉽게 정할 수 있다. 그러나 경도는 훨씬 어려운 문제다. 각기 다른 두 위치에서 천문학적인 측정을 할 두 명의 관찰자가 필요하고 이들 두 관찰자 사이에는 역시 시간의 동기화 문제가 존재한다. 정확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계의 시계를 동기화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푸앵카레는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규약(convent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신간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동아시아 펴냄)에 묘사된 아인슈타인과 푸앵카레의 이야기는 이들의 업적이 어느 날 갑자기 천재 과학자의 머릿속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들의 이야기에는 19세기 후반 이후 철도와 전신의 팽창, 무선 통신의 확장, 제국주의 같은 요소들이 배경으로 깔린다.
미국의 과학사학자인 피터 갤리슨 하버드대 조지프 펠레그리노 석좌교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푸앵카레의 시간 동기화 개념이 전 세계적으로 시간과 지도의 통일 과정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준다.
책은 두 사람의 업적을 소개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육상과 해저에 전 세계적으로 전신케이블을 설치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 경도 탐색 과정에서 지도제작자들이 겪었던 어려움, 전신 신호를 이용한 시계 동기화와 세계지도 제작 과정, 미터법 규약이 국제화하는 과정, 본초자오선 유치를 위한 프랑스와 영국의 경쟁 등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시계와 지도를 둘러싼 풍경들을 다채롭게 그려낸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에 관해 썼던 논문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동역학'은 1905년 발표됐다. 그보다 앞서 푸앵카레는 1898년 '시간의 척도' 논문에서 동시성은 빛과 같은 신호의 교환을 통해 시계를 맞추는 것으로 정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아인슈타인이 푸앵카레의 논문을 읽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논문에 참고문헌과 각주를 실을 때도 한 번도 푸앵카레의 이름을 싣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대 등에서 물리철학과 물리학사를 가르치는 김재영 씨와 이희은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함께 번역했다. 484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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