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재확인" 사실상 리셴룽 총리 편들기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싱가포르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리콴유(李光耀 2015년 사망) 전 총리 자녀들 간의 '형제의 난'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고촉통(吳作棟 76) 전 총리가 이번 싸움을 형제간의 권력투쟁으로 규정하고 리셴룽((李顯龍·65) 현 총리에 대한 지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5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싱가포르 명예선임장관인 고 전 총리는 전날 의회에서 "리콴유 자녀들의 다툼이 도를 넘어서 싱가포르의 명성을 더럽혔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고 전 총리는 또 싸움의 전면에 등장한 '리콴유 자택 처리 문제'가 회화작품에서 나체의 국부를 가리는 데 쓰인 '무화과 잎'에 불과하다고 언급하면서, 싸움의 본질이 유산이나 돈이 아닌 '권력투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리셴룽 총리를 비판한 차남 리셴양(李顯陽·60) 싱가포르 민간항공국 이사회 의장과 리웨이링(李瑋玲·62) 싱가포르 국립 뇌신경의학원 원장을 겨냥해 "그들이 비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싱가포르를 구하려는 숭고한 의도로 고발했나. 아니면 국가가 입을 손해를 무시한 채 개인적인 복수를 했을까"고 반문했다.
고 전 총리는 이어 "그들은 정부와 국민이 감내해야 할 엄청난 손실을 무시한 채 일을 벌인 것은 리셴룽 총리를 낙마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만약 리씨 형제들이 아버지의 명성과 유산을 낭비하면서 서로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은 가족의 문제지만, 그들의 자기파괴 과정에서 국가가 무너진다면 이는 공공의 문제"라며 "국민은 이제 이 문제에 대해 염증을 느낀다. 국민은 더는 노리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끝으로 "우리는 총리에 대한 의혹을 벗기든 아니면 총리를 비판하든 이번 논쟁을 통해 분명한 결론을 내야 한다"며 "총리와 부총리의 해명, 리셴양의 주장, 의원들의 질의를 모두 경청한 결과 나는 리센룽 총리의 진실성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했다"고 결론지었다.
싱가포르의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의 장남인 리셴룽은 2004년 총리에 취임한 이후 지난 10여 년간 국정을 무난하게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형제들과의 사이가 벌어지면서 명성에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동생들은 리 총리가 '사후에 자택을 허물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어기고 이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면서 '왕조 정치'를 꿈꾼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리셴룽이 아들인 리홍이(李鴻毅·30)에게 권좌를 넘겨주려 한다는 주장까지 폈다.
이에 리셴룽 총리는 제수인 리수엣펀 변호사에 의한 아버지의 유언장 조작설을 제기했고, 남동생인 리셴양이 형수인 호칭(何晶·64) 테마섹 최고경영자의 부친 문서 절도 의혹을 제기하는 등 형제간 갈등은 깊어져 갔다.
'정면돌파'를 택한 리셴룽 총리는 지난 3일부터 의회에서 청문회 형식의 토론회를 열고 형제들이 제기한 각종 의혹을 해명했다.
이틀간의 토론회가 끝난 뒤 리 총리는 스스로 의혹이 대체로 해소됐다고 선언했지만, 동생들은 또다시 페이스북 성명을 통해 총리가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고촉통은 리콴유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지난 1990년부터 2004년까지 싱가포르의 2대 총리와 여당인 인민행동당 총서기를 지낸 정치원로다. 2011년 선임장관과 통화청장을 내놓고 2선으로 물러났지만 지금도 국회의원과 명예선임장관으로 활동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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