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5천명 일자리 잃고 공사장·아르바이트·구직 '전전'
(군산=연합뉴스) 최영수 기자 = "가족과 떨어진 채 건축현장을 전전한 지 4개월째입니다. 조선소가 빨리 재가동해 동료와 현장에서 다시 부대끼고 싶습니다. 가족 품이 그립습니다."
지난 3월 중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를 나와 전남 목포에서 건설·건축현장을 돌면서 페인트칠을 하는 김기수(가명·43) 씨의 한숨이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김씨는 이달 1일부터 가동을 중단한 군산조선소 사내협력업체에서 6년가량 선박 도장 일을 하다가 일감이 떨어지자 회사를 나왔다.
직원 100여 명은 올 2∼6월 순차적으로 직장을 떠났고 협력업체도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다 지난달 말 결국 폐업했다.
일부 동료가 울산, 거제, 목포의 조선소로 옮겨갔지만, 대부분은 조선업과 관련 없는 업종에서 일하거나 단기근무,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너덧 명은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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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에서 하루 8∼12시간 일해 월 500만원까지도 받았던 김씨에게 월 120만원의 실업급여는 가족 4명의 생계를 꾸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적금과 보험을 해약하고 자녀 둘이 다니던 학원과 과외도 중단했다. 전업주부이던 아내도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김씨는 지금 가족이 있는 군산을 떠나 낯선 곳에서 박봉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한다.
그는 "군산조선소가 계속 가동될 줄 알고 정년 때까지 일하려 했지만, 실직하면서 계획한 삶이 모두 차질을 빚었다"며 "무엇보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이 힘들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선박 도장 일이 쉽지 않았지만 행복했었다. 군산조선소가 빨리 재가동돼 현장으로 돌아가 동료들과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싶다. 그리고 가족들과 오순도순 살고 싶다"는 절박한 소망을 들려줬다.
김씨와 함께 일한 이모(38)씨도 조선소 가동 중단을 목전에 둔 지난달 하순 동료 3명과 회사를 나왔다.
다행히 이씨는 지인 소개로 전북 익산의 재활용업체에 들어갔다.
조선소에서 월 400만 원 정도를 받던 이씨는 월 200만 원을 약속받고 이번 주부터 일을 시작했다.
이씨는 "새 일을 하려니 낯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몸담았던 회사가 문 닫고 동료가 뿔뿔이 흩어져 가슴이 저민다"며 "군산조선소가 빨리 정상화해 현장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내협력업체 근로자 박진훈(가명·38)씨는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텼지만, 이제는 언제 재가동할지 모르는 조선소만을 바라볼 수 없어 새 일을 찾으려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선체조립 관리업무를 한 박희석(가명·41) 씨는 군산을 떠나 경기도 파주시 건설현장에서 막노동한다.
작년 1월 작업물량이 없어 10년 넘게 해온 일을 그만두고 120만원의 실업급여를 3개월 동안 받았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자 건설근로자로 나섰다. 조선소 동료 2명도 그곳에서 함께 일한다.
그는 "미혼인 게 그나마 다행"이라며 "결혼해서 아내와 자녀들이 있다면 지금의 상황을 견디기 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생활근거지를 떠나 박봉에 언제 끊길지 모르는 건설일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불안하고 못마땅하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버티면서 조선소가 정상화하는 그 날을 기다리겠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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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일 일감 부족으로 가동을 중단한 군산조선소에는 설비와 공장 유지보수 등을 위한 인력 50명가량만 남게 된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내·외 협력업체 직원 등 500명가량도 이달 중순께 공장을 떠나야 한다.
지난해 이맘때 5천250명이던 업계 근로자 가운데 4천709명이 직장을 잃어 대량 실직과 업계 줄도산이 현실화하고 있다.
일터를 떠나 뿔뿔이 흩어진 근로자들은 조선소가 재가동해 예전처럼 동료와 부대끼면서 땀 흘려 일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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