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공공부문 시행놓고 구직자·채용기관 모두 설왕설래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성서호 기자 = "학력을 따지지 않는다니 반가운 일이죠. 한국사회가 워낙 '간판'을 중시하다 보니 출신 대학만으로 능력을 따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6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공기업 준비학원에서 만난 황정규(27)씨는 지난 5일 고용노동부가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발표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추진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공공기관 입사지원서에 출신 지역, 신체조건, 학력을 기재하고 사진을 부착하는 것이 금지된다. 또 면접 단계에서 면접관이 응시자의 인적사항에 관해 물어서는 안 되며 직무 관련 질문만 허용된다.
하반기에 전격 시행되는 이 제도를 놓고 입사 지원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동시에 채용을 진행해야 할 공공기관에서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노량진의 학원가에서 만난 공공기관 입사 준비생들은 대체로 환영의 뜻을 밝혔다. 올해 2월 지방대를 졸업하고 금융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황씨는 "지방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취업 시장에서 약점으로 작용하 것 같다. 입사지원서에 출신 대학을 기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가볍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해 현재 2년째 구직 활동 중인 김유정(24·여) 씨는 "정말 직무에 맞는 사람인지,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평가하는 데 외모나 학벌은 필요 없다"며 "(민간까지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량진의 한 공기업 준비학원 관계자는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취업 준비생들은 대체로 환영하고 있다"며 "전반적으로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려 한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학벌이나 학점과 같은 '스펙'보다도 얼마나 업무와 관련한 역량을 갖추었는가가 중요한 평가 잣대가 될 것"이라며 "국가직무 능력표준(NCS)을 중심으로 한 필기시험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이 역차별이라는 반발도 있었다.
노량진에서 공기업 입사를 준비 중인 김모(24·여)씨는 "나이와 성별, 학교 등을 블라인드로 처리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학점도 기재를 금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 안에 따르면 총점은 기재할 수 없고, 직무에 연관된 특정 과목 학점만 기재가 가능하다. 이어 그는 "취업을 위해 대학 내내 성실하게 수업 듣고 학점 관리에 신경 써 왔는데 어쩐지 본인 노력은 인정받지 못한 것 같아 다소 허탈한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사 취업 준비생 황모(28)씨는 "이른바 명문대를 나왔다는 것이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거나 성실한 사람이라거나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며 "출신 대학으로 능력을 평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아예 배제하겠다는 역차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블라인드 채용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 이도 있었다. 수도권 대학 출신으로 올해 취업 시장에 나선 박희운(26) 씨는 "학력을 기재하거나 사진 부착을 금지하는 방안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학력이든 인상이든 그것에 중점을 두는 회사라면 그에 맞는 직원을 뽑는 게 당연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에서도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반응이 엇갈렸다.
5일자 연합뉴스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전면 시행…지원서에 학력·사진 금지" 기사에 아이디 'semo****'는 "좋은 제도다. 특별히 전문성을 요구하지 않는 한 인성과 조직에 필요한 사람을 뽑는 게 조직에도 장기적으로 유리하다"고 댓글을 남겼다.
반면 아이디 'grin****'는 "누군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갔는데 학벌은 당연히 실력이 되는 게 맞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서울대생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한 학생은 "기회균등이나 평등 같은 개념들에 동의해왔지만 정작 블라인드 채용이 제 일이 되니 답답하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학생은 "학력기재가 없어진다면 업무 자체에 특화된 교육을 받은 실업계 출신들이 유리해지고 순수학문만 배웠던 대졸 출신들은 불리해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당장 블라인드 방식으로 신입사원을 선발해야 하는 공공기관의 반응도 엇갈렸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일장일단은 있겠지만,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정책"이라며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시행한다면 부작용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지역인재 채용 할당제를 시행하는 한 공기업 관계자는 "지역인재를 뽑는 전형의 경우 이번 지침에 따라 학력과 출신 지역을 기재하지 않으면 해당 지원자를 가려낼 수 없어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기업 관계자는 "현재도 대학명 등 많은 부분을 블라인드 방식으로 채용하고 있다. 다만 너무 많은 정보를 블라인드 처리하게 되면 직무에 적합한 최적의 인재를 뽑는데 차질이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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