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수첩 내용 증거능력 부정…특검 "간접 증거 인정한 것"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재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독대와 관련한 여러 내용이 적힌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업무 수첩에 대해 법원이 '뇌물 독대'의 직접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 부회장의 혐의 입증에 증거로 쓸 수 있는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수첩 내용이 진실인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일단 수첩에 적어놓은 자체는 하나의 사실이라며 재판에 참고할 정황 증거로 채택했다.
이에 대해 특검 측은 핵심 간접 증거가 인정된 것이므로 나름 의미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5일부터 6일 새벽까지 이어진 이 부회장 재판에서 "수첩에 기재된 내용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내용이라는 점에 대해 진술 증거로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기재 내용의 진정성과 관계없이 수첩의 기재가 존재한다는 자체에 대한 정황 증거로 채택하겠다"며 간접 증거로만 받아들였다.
'증거능력'은 증거로서 쓸 수 있는 법률상 자격을 말한다. 증거능력이 인정되면 한 발 더 나아가 이를 토대로 특정인의 혐의가 유죄임을 증명하는 '증명력'을 가졌는지를 살피게 된다. 안 전 수석의 수첩 내용은 이 부회장의 혐의 입증을 위한 직접 증거로는 쓸 수 없게 됐다.
안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나 박 전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 등을 업무 수첩에 기재했다. 일례로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2차 독대가 있던 2015년 7월 25일 이후 수첩엔 '제일기획 스포츠담당 김재열 사장, 메달리스트, 승마협회' 등의 단어가 기재돼 있다.
안 전 수석은 특검에서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 개별 면담 후 면담 과정에서 나온 내용을 불러줘 기재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특검은 안 전 수석의 수첩에 적어놓은 내용이 두 사람 간 뇌물을 주고받기로 약속한 핵심 증거로 보고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수첩에 기재된 내용이 독대와 관련한 주변 정황 사실을 설명하는 '간접' 증거는 되더라도,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뇌물을 주고받았고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공소사실을 증명할 직접 증거로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앞서 최씨와 안 전 수석의 미르·K재단 강제 모금 사건,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입학·학사비리 사건의 심리를 맡은 재판부도 안 전 수석의 업무 수첩에 대해선 정황 증거로서만 채택했다. 수첩 내용의 '진실성'을 인정한다는 게 아니라 수첩에 '그런 기재 내용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 인정한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해 특검 관계자는 "안종범 수첩을 증거로 제출한 것은 원래 독대 상황에 대한 핵심적인 간접 증거였기 때문이며 재판부가 이를 인정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향후 재판에서 공소사실을 입증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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