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 서울대 교수, 독성학 국제학술대회서 국내 현황 발표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한국은 '비소 청정지역'이 아닙니다. 하루빨리 전국의 음용수 중 비소 농도를 측정한 정밀 지도를 작성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9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약학과 정진호(62) 교수는 "지난 30∼4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음용수 중의 비소 노출에 의한 사망자가 1만 명에 달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독성학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정 교수는 10∼12일 일본 요코하마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제44차 일본독성학회 연례학술대회'에 초청받아 '중금속 비소의 건강장애와 관련된 15년간의 연구'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
특히 정 교수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국내 음용수의 비소 노출 현황에 대한 자료와 비소가 심혈관질환과 암을 일으키는 기전(機轉)을 발표할 예정이다.
비소는 모든 화학물질 가운데 미국 독성물질 질병등록국(ATSDR)이 1순위 관리 대상으로 삼은 유해물질이다. 인체 노출 가능성, 인체 독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납과 수은보다 유해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비소는 물과 토양 등 자연계에 널리 분포하기 때문에 지하수와 식품을 통해 중독되기 쉽다. 실제 방글라데시에서는 비소에 오염된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해 수천만 명이 비소 중독으로 고통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교수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2008년 환경부의 연구과제로 전국 지하수의 비소 농도를 측정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 교수가 여름철 708곳과 겨울철 636곳의 지하수의 비소 농도를 측정한 결과 여름의 경우 15곳, 겨울은 14곳이 기준치 10ppb(ppb는 10억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를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해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국제학술지에 실린 바 있다.
정 교수는 또 "최근 미국의 역학조사를 보면 음용수 중 비소 농도가 10∼50ppb인 지역에서 암과 심혈관질환 발생이 증가했다는 내용이 보고되고 있다"며 "현재 기준치 10ppb가 인체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학자들 간에 논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비소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정 교수는 "각 지자체에서 비소 농도를 얼마나 정확하게 신뢰성 있게 측정하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이번 학술대회에서 비소가 심혈관질환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정 교수는 2002년 비소가 혈소판의 응집을 증가시켜 고혈압과 뇌혈관질환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또 최근 동물 시험을 통해 비소에 의한 혈소판 활성화가 암세포의 전이를 쉽게 만든다는 사실도 규명했다.
정 교수는 "최초로 동물모델을 이용해 비소에 의한 암 사망의 원인을 밝혔다"며 "앞으로 음용수 중 비소 기준치 설정을 위한 위해성 평가의 주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비소에 관한 연구 등의 공로로 지난 2008년에는 독성학 분야의 3대 권위지 가운데 하나인 `케미컬 리서치 인 톡시콜로지(Chemical Research in Toxicology)' 표지 사진을 장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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