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수출 천연가스 '국부'에 국제 여론 나쁘지 않아
사우디 왕권 교체기 '독립선언' 적기로 본 듯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류 수니 아랍국가에 단교에 대한 카타르의 반격 수위가 수그러지지 않을 기세다.
중동에서 '대국'으로 꼽히는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같은 나라가 국경을 봉쇄하면서 압박하는 데도 움츠러들기는커녕 국제사회를 상대로 '피해자'임을 부각하면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려 하고 있다.
조용했던 걸프의 소국 카타르가 이번 단교 사태로 오히려 '네임 밸류'가 크게 높아지는 부수 효과도 얻고 있다.
지난달 5일 시작된 단교 사태 초기만 해도 카타르는 단교의 원인과 관련해 "영문을 모르겠다. 이웃 국가들이 오해한 것 같다"면서 단교의 표면적인 이유인 테러리즘 지원을 강하게 부인하는 입장을 유지했다.
이후 지난달 22일 사우디 등 단교를 주도한 4개국이 단교 해제를 위해 카타르에 제시한 13개 선결 조건의 내용이 공개되자 카타르는 더 공세적인 대응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이 요구를 계기로 협상에 나서기보다는 본격적으로 독립된 주권을 거론하면서 맞섰다.
카타르는 이번 단교 위기를 사우디의 '우산'에서 벗어날 기회로 본 셈이다.
카타르는 미국과 서방의 유력 언론을 부지런히 접촉하면서 자신의 '주권 침해 피해 사실'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이런 여론전엔 20년간 국제적 네트워크와 인지도 구축한 알자지라 방송국도 충분히 이용했다.
셰이크 모하마드 알타니 카타르 외무장관은 6일 미국 CNN과 인터뷰에서 "단교의 진짜 원인은 카타르의 독립성과 그에 따른 정책"이라면서 "큰 나라들은 자신의 역할이 영향받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면서 사우디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카타르 정부가 직접 자신이 추구한 독자 노선을 직접 단교의 이유로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셰이크 모하마드 장관은 또 "미국 언론인이 (시리아 알카에다 연계조직) 알누스라에서 석방되는 데 중재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중재와 지원은 별개가 아니냐"고 과감하게 항변했다.
그렇지 않아도 테러조직을 지원한다는 의혹을 받는 예민한 시점에 먼저 알카에다와 물밑 채널이 있다는 점을 자인한 것이다.
셰이크 모하마드 장관은 테러리즘 지원 의혹을 부인하는 수동적인 입장에 머무르지 않고 사우디의 위성국이 아닌 주권 국가로서 카타르의 위치를 확인했다.
아울러 역내 주류 국가의 일방통행에 대결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구도를 노려 국제사회에서 일종의 동정과 지지를 얻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위험요소에도 카타르가 지역의 대국과 맞설 수 있는 배경은 다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집트나 바레인 등 다른 수니 아랍국가와 달리 카타르는 '큰 형님'격인 사우디에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카타르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출량이 세계 1위이며 세계 최대 매장량의 해상 가스전(노스 돔)을 보유한 덕분이다. 2014년 기준 카타르의 LNG 수출액은 1천250억 달러(현재 환율기준 약 144조원)에 이른다.
알리 샤리프 알에마디 카타르 재무장관은 7일 자 영국 일간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카타르가 지난 수십 년간 천연가스 판매를 통해 국내총생산(GDP)의 250%에 해당하는 국부를 갖고 있다"면서 봉쇄에 견딜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카타르의 연 GDP는 1천670억 달러(약180조원)이다.
주변 정세도 불리하지만은 않다.
이웃 사우디와 UAE가 국경과 영공·영해를 봉쇄했지만 다른 대국인 이란, 터키가 카타르를 지지하고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 쿠웨이트와 오만이 단교에 동참하지 않았다.
국제 여론도 '다윗' 카타르에 나쁘지는 않은 분위기다. 특히 유럽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와 급속히 밀착한 사우디 왕가를 경계하는 흐름도 읽힌다.
사우디 등이 이란식으로 카타르를 봉쇄·제재해도 국제사회가 동참하지 않으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카타르산 LNG의 주요 수입국은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와 유럽이 대부분이고, 이들 계약은 산업의 특성상 수십 년짜리 장기 거래다.
LNG의 수출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카타르에 우호적인 이란이 쥔 것도 카타르엔 유리하다.
큰 그림으로 보면 카타르의 '과감함'엔 시기적으로 사우디의 왕권 교체를 염두에 둔 것으로도 해석된다.
살만 사우디 국왕의 나이(82)를 고려하면, 왕권 교체가 수년 안에 이뤄질 가능성이 있고 후계자는 30대 초반의 빈살만 왕자다.
빈살만 왕자가 사우디 국왕에 즉위하면 아랍국가 지도자 가운데 최연소가 된다. 지도력과 나이는 비례하지 않지만 아랍권에서 가장 어린 국왕이 이끄는 사우디는 '장유유서'의 전통이 있는 아랍권에서 큰 형으로서 장악력이 이전과는 달라질 수 있다.
카타르가 사우디의 '중력'을 이겨내고 '독립'을 선언하는 적기가 된다는 의미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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