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법 한달 일선 불만 고조…"강제입원진단 편법만 늘어"

입력 2017-07-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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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법 한달 일선 불만 고조…"강제입원진단 편법만 늘어"

신경정신건강의학회 "인력부족으로 제대로 된 2차 진단 불가능"

(서울=연합뉴스) 김민수 기자 = "4시간만에 정신병원 입원 연장심사를 위한 2차 진단을 60명 정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어요. 정신질환은 최소 20분 이상 상담을 거쳐야 환자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데 말이죠. 이게 환자 인권 보호인가요?"

수도권에서 정신병원을 운영하는 원장 A 씨는 지난 5월 30일부터 시행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에 대해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예전보다 행정절차는 많아졌는데 의료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환자를 꼼꼼하게 돌볼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A 씨는 "병원에 입원하는 정신질환자의 90%는 민간 의료기관이 담당한다"며 "병원 운영과 입원 환자를 돌보기에도 빠듯한데 일부러 시간을 내서 주변의 다른 정신병원을 방문해 2차 진단을 해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9일 대한신경정신건강의학회 등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가 정신질환자의 인권 강화를 위해 강제입원 요건을 강화한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넘어가면서 제도 정착보다는 편법 운영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법은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과 자·타해 위험이 모두 인정돼야 강제입원이 가능하고, 강제입원을 했더라도 입원을 2주 이상 유지하려면 다른 의료기관 소속 전문의 1명의 추가 진단(2차 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장기입원 절차도 엄격해져 '입원연장심사'를 기존 6개월에서 3개월마다 시행하도록 규정했으며 이때 역시 2차 진단이 이뤄져야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2차 진단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법이 무리하게 시행돼 '환자 인권 보호'라는 법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회에 따르면 연간 정신질환으로 입원 상담을 받는 건수는 약 4만6천건에 이른다. 국공립병원에 소속된 전문의 300~400명만으로는 2차 진단 건수를 모두 소화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신경정신건강의학회 등에서 정신건강복지법에 대한 문제점을 지속해서 제기하자 당초 계획을 바꿔 2차 진단을 할 전문의가 부족할 경우 오는 12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국공립병원 등 다른 의료기관이 아닌 같은 병원 소속 전문의로 대체할 수 있도록 변경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인력이 부족해 1차 진단 결과를 대충 살펴보고, 2차 진단에 단순 결제만 하는 편법이 늘 수밖에 없다는 게 의료계의 하소연이다.

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법대책 태스크포스팀(TFT) 위원장을 맡은 권준수 서울대병원 교수는 "부득이하게 2차 진단을 받지 못한 중증 정신질환자도 강제로 병원에서 나가야 할 상황"이라며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법만 우선으로 시행하면 당연히 일선 진료현장에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권 교수는 "이 법의 근본 취지는 '환자 인권 보호'다. 제대로 된 진단도 받지 못하고, 행정절차에 의해 강제로 병원에서 나가게 된다면 환자와 가족에게 더 큰 피해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치료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중증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행정 절차상의 이유로 강제 퇴원하면 살인, 방화와 같은 사회적 사건·사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임명호 단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예를 들어 치료를 잘 받는 조현병 환자는 폭력범죄가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높지 않지만, 방치된 조현병 환자는 폭력범죄율이 일반인보다 2~3배 이상 높다는 연구결과가 외국에서 나온 적 있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무조건 조현병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의심해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의료 서비스가 중단돼서도 안 된다"며 "새롭게 적용된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인해 정신과 환자가 입원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는 권리가 커졌지만, 오히려 중증환자가 치료받을 권리와 기회를 박탈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차·2차 병원급에서는 정부가 2차 진단 의료인력 확보를 위해 민간 의료기관에 강제로 '지정 진단 의료기관' 자격을 신청하도록 조장하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지정 진단 의료기관 자격을 신청하지 않은 민간 의료기관에 대해 정부가 행정입원 환자 배정 우선순위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통보해왔다는 것이다. 행정입원은 보건소 등 정부기관이 상태가 심각한 정신질환자를 입원 조치하는 절차를 뜻한다.

이태주 한국정신보건이사회 이사(공감정신건강의학과 원장)는 "정신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입장에서 행정입원 환자를 배정받지 않으면 병원수익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이런 실태를 잘 알고 있는 정부가 민간 정신병원에 근무하는 전문의들에게 무조건 2차 진단에 참여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이 이사는 "정부가 정신질환자의 인권 향상을 목표로 삼고 있다면 퇴원 후 가정, 직장 등에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각종 교육 프로그램 마련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km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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