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공포물 등 소외된 장르 개봉 요청 잇따라
블록버스터에 편중된 영화시장 다양화에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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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관객이 개봉시킨 영화'
요즘 영화 홍보 문구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표현이다.
인터넷을 통해 관객이 국내 미개봉작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게 되면서 관객의 입김이 영화 개봉에까지 미치고 있다.
'관객이 개봉시킨 영화'들은 주로 청춘물, 공포물 등 국내 영화시장에서 소외된 장르라는 점에서 특정 장르에 편중된 극장가에 다양한 영화를 요구하는 관객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달 28일 간판을 내건 영화 '지랄발광 17세'는 극장 개봉 없이 DVD로 직행할 운명이었다가 관객의 요청으로 개봉이 이뤄졌다.
직배사 소니 픽쳐스는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개봉한 이 영화가 국내에서 흥행에 쉽지 않은 하이틴 무비라는 점에서 극장 개봉 없이 DVD로 제작하기로 올해 초 결정하고 5월 발매를 목표로 인쇄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영화의 해외 예고편이 한국어로 번역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면서 영화를 극장에서 개봉시켜달라는 예비 관객들의 요청이 빗발쳤다.
소니 픽쳐스 관계자는 "페이스북에 영화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한 영화 마니아가 작년 11월 직접 번역해 올린 예고편 한국어판이 순식간에 100만 뷰를 기록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며 "회사 블로그와 페이스북 계정에도 개봉시켜달라는 요청 글이 잇따랐다"고 전했다.
결국 소니 픽쳐스는 이미 제작된 DVD 패키지를 폐기하고 이 영화를 극장에서 개봉하기로 했다.
전국 58개 상영관으로 출발한 이 영화는 입소문에 힘입어 상영관을 80여 개로 확대하면서 누적 관객 5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배급사 관계자는 "개봉 2주차에 들어선 영화가 상영관을 늘리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여름 대목을 맞아 쏟아지는 국내외 블록버스터 틈바구니에서 기대 이상의 흥행실적을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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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일 개봉하는 '플립' 역시 '관객이 개봉시킨 영화'로 꼽힌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랍 라이너 감독이 만든 이 작품은 이웃에 사는 소년 소녀의 풋풋한 첫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서로 엇갈리는 소년 소녀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각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로맨스 영화이자 성장드라마다.
미국에서는 2010년 개봉한 이 영화가 7년 만에 국내에 정식 개봉된 데에는 인터넷 다운로드를 통해 영화를 접한 관객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이 작품을 수입·배급한 팝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국내에서 개봉하지도 않은 영화가 네이버에서 평점 9.45점을 받고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인 왓챠 플레이에서 무려 18만 개의 리뷰가 달렸다"며 온라인상의 호응을 믿고 개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개봉한 공포 영화 '겟 아웃'은 관객의 요청으로 개봉해 흥행 대박을 터뜨린 첫 사례로 꼽힌다.
미국에서는 지난 2월 개봉한 이 영화 역시 해외 예고편의 인기와 관객들의 개봉 요청에 따라 국내에서 뒤늦게 개봉이 이뤄졌는데, 누적 관객 213만 명을 넘어서면서 역대 외화 최고 흥행작인 컨저링(226만명)의 기록에 바짝 다가섰다. 이 영화는 개봉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지만 일부 상영관에서 여전히 상영되고 있다.
당초 국내에서는 인지도 낮은 배우와 인종차별이라는 소재 등이 흥행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UPI코리아는 네티즌의 호응을 믿고 개봉을 감행한 결과 북미를 제외한 지역 가운데 최고의 흥행실적을 달성하는 성과를 올렸다.
업계 관계자는 "관객들이 해외 영화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해외 작품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개봉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관객의 요청으로 개봉에 이른 영화들은 청춘물이나 공포물 등 국내 영화계에서 소외된 장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액션 블록버스터 등 일부 장르에 편중된 국내 영화시장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허남웅 평론가는 "한국의 극장가가 흥행에 검증된 장르와 스타 캐스팅이 돋보이는 블록버스터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다양성의 갈증에서 비롯된 결과로 보인다"며 "극장 개봉을 촉구하는 이런 영화 소비자들의 움직임이 블록버스터 위주의 배급 정책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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