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이 천근만근…'끔뻑끔뻑' 운전대 잡는 버스기사들

입력 2017-07-11 14:16   수정 2017-07-11 16:05

눈꺼풀이 천근만근…'끔뻑끔뻑' 운전대 잡는 버스기사들

경부고속도 버스사고 기사, 16시간 30분 근무 후 자정 퇴근-오전 6시30분 출근

자동차노련 "휴게시간 보장하라고 법 바뀌었지만 점검은 없어"

(오산=연합뉴스) 강영훈 권준우 기자 = '졸음운전' 버스사고의 운전기사는 하루 16시간 30분 동안 운행과 휴식을 반복하는 격무에 시달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버스회사의 기사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아 비슷한 사고의 재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버스 기사의 휴게시간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점검에 나선다는 계획이지만, 전문가들은 버스 기사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을 개선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 꼬리 무는 '졸음운전' 버스사고

지난 9일 오후 2시 40분께 서울시 서초구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 신양재나들목 인근 2차로에서 경기 오산에 있는 오산교통 소속 버스 기사 김모(51)씨가 몰던 광역버스(M버스)가 K5 승용차 등 차량 6대를 잇달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버스에 들이받힌 K5 승용차에 탑승해 있던 50대 부부가 숨지고, 다른 차량에 탄 16명이 다쳤다.

당시 버스 블랙박스 영상에 찍힌 김씨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 눈을 감고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핸들을 느슨하게 잡고 있다가 K5 승용차 추돌 후 핸들을 꽉 붙드는 모습이 보여 졸음이 온 상태에서 운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씨는 경찰에서 "과로로 운전하던 중 깜빡 정신을 잃었다"고 진술했다.




큰 인명 피해를 유발하는 졸음운전 버스사고는 갈수록 빈도가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 5월 11일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영동고속도로 인천 방향 둔내터널 인근에서 정모(49)씨가 몰던 고속버스가 앞서가던 스타렉스 승합차를 들이받아 승합차에 탄 노인 4명이 숨지고,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은 버스 기사 정씨가 사실상 졸음운전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7월 17일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영동고속도로 인천 방향 봉평터널 입구에서 방모(58)씨가 운전하던 관광버스가 K5 승용차 등 5대를 잇달아 추돌해 20대 여성 4명이 숨지고, 38명이 다쳤다. 방씨 또한 반수면 상태에서 운전하다가 사고를 냈다고 실토했다.

◇ 쉴 틈 없이 운전대 잡는 버스 기사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자동차노련)이 입수한 오산교통 소속 버스 기사 김씨의 근무일지를 살펴보면, 김씨는 거의 쉴 틈 없이 운행을 반복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사고 전날인 8일 오전 5시 첫차를 시작으로, 같은 날 오후 11시 30분 마지막 운행까지 총 18시간 30분을 일했다.

차량을 반납하고 회사를 떠난 시간이 자정께였고, 이튿날이자 사고 당일인 9일 오전 6시 30분께 출근해 7시 15분 첫 운행을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5시간도 채 자지 못한 채 다시 운전대를 잡은 것이다.

이런 식의 근무는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지난 7일에는 하루 휴무였으나, 5일과 6일에도 모두 출근해 각각 15시간 45분, 18시간 25분을 일했다.

올해 2월 개정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여객법)은 버스의 경우 1일 운행 종료 후 연속 휴식시간 8시간을 보장하고, 1회 운행 후 최소 10분 이상(시외·고속·전세는 15분 이상) 휴게시간을 부여하는 등 버스 기사들의 격무를 줄이기 위한 규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앞선 4월에는 18일 동안 297시간(이틀 연속 근로 6번), 5월에는 19일 동안 313시간 30분(이틀 연속 근로 8번), 6월에는 19일 동안 313시간 30분(이틀 연속 근로 7번)을 일했다.

자동차노련은 오산교통이 법은 고사하고, 노사 합의사항도 이행치 않았다고 주장한다.

자동차노련 관계자는 "오산교통은 노사 합의사항으로 하루 근로시간을 16시간 30분으로 정했으나, 버스 기사들은 그를 초과해 일할 때가 많았다"며 "다른 회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기지역 버스회사의 협정 근로시간은 적게는 15시간, 많게는 19시간에 이르는 곳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통 버스회사는 격일제 근로 사업장으로 운영되는데 법정 만근인 13∼15일 동안 하루 16시간 이상 버스를 몰아도 월급은 25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초과근무를 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렵다 보니 기사들이 졸음을 참아가며 운전대를 잡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 법 개정했지만 점검은 나 몰라라

올해 3월 오산교통은 오산∼사당 1개 노선 M버스를 개통하고, 5대의 버스와 8명의 기사를 배치했다.

관할 지자체인 오산시는 이 시기, 개정된 여객 법을 준수하라는 당부를 하기 위해 오산교통을 방문한 적이 있으나, 그 이후 별다른지도·점검을 하지 않았다.

최근인 지난 6일 재생타이어 관련 점검을 하고 지난 5월 배차시간 및 안전운행 준수 교육을 한 것이 전부였다.

M버스 면허를 내준 국토교통부도 각 지자체에 법 개정과 관련한 공문을 보냈을 뿐, 관련 점검은 벌인 바 없다.

자동차노련은 지난 10일 낸 성명에서 "법이 시행된 지 4개월이 넘었지만, 국토교통부는 M버스의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 사실을 한 번도 점검하지 않았다"며 "지자체도 조사에 나선 적이 없다. 노조에서 법 위반 사실을 행정관청에 알리고 법률 위반을 막아달라고 호소했지만 모두 외면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사고가 나자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토부는 오산교통이 여객 법을 위반한 사항이 있다고 보고 다음 주 중 특별안전점검에 나설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사고를 낸 버스 기사 김 씨의 근무일지를 보니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출근했는데, 이는 여객 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이와 더불어 버스 기사 관리 실태 등 교통안전과 관련한 전반적인 부분을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단발성 점검만으로는 사고 예방을 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단기적으로는 안전설비를 도입하고, 장기적으로는 열악한 근로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경우 한양대학교 교통공학과 교수는 "버스 기사의 장시간 노동은 열악한 근무 조건으로 구성된 노사 합의가 그 원인"이라며 "먼저 자동 비상제동장치 등 안전설비를 도입해 사고를 막고, 장기적으로는 노사 합의를 통해 버스 기사들의 근무시간을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ky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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