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쿠데타 1년]① 탱크 막아낸 기쁨은 잠시…공포와 침묵이 덮쳤다

입력 2017-07-12 18:00   수정 2017-07-12 18:03

[터키쿠데타 1년]① 탱크 막아낸 기쁨은 잠시…공포와 침묵이 덮쳤다

5만여명 아직 감옥에…15만명은 직장 잃고 재취업도 제한

에르도안, 개헌 숙원 성취…"평화·안녕 되찾기까지 비상사태 유지"

[※편집자주 = 오는 15일이면 터키에서 쿠데타 시도가 있은 지 1년이 됩니다. 전투기와 탱크를 앞세우고 핵심시설을 일시 점령한 쿠데타 세력은 군·경과 교전, 일반시민의 맨몸 저지에 막혀 이내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처럼 쿠데타 시도가 무위에 그친지 1년이 지났지만 쿠데타 가담자로 지목된 5만500명이 아직도 수감돼 있으며 15만명이 직장을 잃은 것으로 나타나 쿠데타 후폭풍은 여전한 모습입니다. 이에 연합뉴스는 △ 탱크 막아낸 기쁨은 잠시…공포와 침묵이 덮쳤다 △ 수갑 찬 '수괴'는 지한파 공군사령관 △ 유력 일간지 편집국장 인터뷰 등 3꼭지 기획물을 송고합니다.]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터키 전역에서 11일(현지시간) 대대적인 '쿠데타 저지 1주년' 행사가 시작됐다.

터키정부가 '민주주의 감시'라고 명명한 기념주간 행사는 이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순교자' 묘 참배로 막이 올랐다.

1년 전 작년 7월 15일 밤 9시경 군부 일부는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대교, 아타튀르크공항, 국영방송, 경찰본부 등 핵심 시설 장악에 나섰다.

그러나 터키인들은 '거리로 나가 반역자에 맞서라'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부름에 호응, 맨몸으로 탱크를 막았다.

쿠데타 시도를 9시도 안 돼 무위로 돌아가게 한 주역은 바로 일반시민이다.

터키정부에 따르면 쿠데타 세력에 맞서다 민간인과 군경 249명이 목숨을 잃었다. 2천200여 명이 다쳤다.


터키인들은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쿠데타 세력을 비판하고, 민주주의 승리를 환영했다.

터키 대기업 재무 담당 임원인 외메르 첼리크(57·이스탄불)씨는 "군부가 어떤 대의명분을 내세웠든, 21세기 터키에 쿠데타는 정당성이 없다"면서 "야당 지지자도 대부분 같은 생각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켰다는 감격은 곧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대규모 투옥과 해고. 무더기 기관 폐쇄 사태가 벌어졌다.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 국가비상사태 선포로, 범죄사실 소명 없이도 한달까지 용의자를 구금하며 심문하는 게 가능해졌다.

사법 조처의 범위는 쿠데타 가담자에서 그치지 않고 당국이 '배후'로 지목한 펫훌라흐 귈렌 연계 조직원으로 확대됐다.

곧 이어 귈렌과 관련이 없는 이들도 무더기로 끌려갔다

현재 쿠데타 사범 5만500여 명이 형을 살고 있거나 구속 상태로 재판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구금된 후 조건부 석방된 사람도 4만8천여 명에 이른다.

군인, 경찰, 교사, 교수, 판·검사, 일반직 공무원 등 공공부문 종사자 15만명이 직장을 잃었다.

고문과 의문사 주장이 나왔고, 시위 강경진압에 사망한 사례도 보고됐으나 대부분 주목받지 못한 채 조용히 묻혔다.

학교, 대학, 병원, 비영리기구 수천 개가 정부 직권으로 문을 닫았다.

최근까지 기업 965곳의 자산 410억터키리라(약 13조원)가 당국에 압류됐다.


사법 조처의 칼끝은 비판이 본업인 언론을 정면으로 겨눴다.

언론자유 감시단체 '국경없는기자회'(RSF)에 따르면 국내외 언론인 150여 명이 터키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다. 이 단체는 올해 언론자유지수에서 터키를 180개국 중 155위로 평가하고, "세계 최대 언론인 감옥"이라고 묘사했다.

터키의 대표적인 일간지에서조차 최고경영자와 편집국장, 베테랑 기자 등 12명이 체포돼 길게는 255일째 옥고를 겪고 있다.

최근 야당이 주도한 '정의 행진' 집회 현장에서 만난 건설업자 무스타파 아자튀르크(61·우샤크)씨는 "정권이 쿠데타 세력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외치는 일반 국민마저 탄압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 사이 에르도안 대통령은 공정성 논란 속에 숙원인 대통령제 개헌을 완수했다. 대통령 권한이 대폭 강화됐고, 2030년대까지 초장기 집권 근거도 마련했다.

자신이 창당한 '정의개발당'(AKP) 대표직에도 3년만에 복귀했다.

대량 구속과 해고 사태, 논란 속 개헌에도 시민사회에는 큰 동요가 없었다. 구속자와 해고자의 가족들마저도 숨을 죽였다.

한국에서라면 가족들이 먼저 거리로 나섰을 것이다.

일간지 줌후리예트의 뷜렌트 외즈도안 편집국장 직무대행은 "지금 터키에는 사법조처에 부당함을 항의했다가는 그 사람도 끌려간다는 두려움이 퍼져 있다"이라며 "공포가 침묵을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작년에 에르도안 대통령 모욕죄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만 1천80명이나 된다. 한 언론사의 '차(茶) 직원'은 경찰관 앞에서 "에르도안 대통령한테는 내 차 안 줄 거요"라고 했다가 대통령 모욕 혐의로 구금됐다.


에르도안 정권은 외부의 '마녀사냥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한 모습이다. 국가비상사태도 해제될 기미가 없다.

앞서 올해 5월 에르도안 대통령은 "작년 쿠데타 시도로 249명이 순국했는데, 누가 감히 국가비상사태를 해제하라 요구할 수 있느냐", "터키에 평화와 안녕이 회복될 때까지 국가비상사태를 해제할 수 없다"고 공언했다.

국가비상사태 1년을 앞두고 최근 반(反)에르도안 진영은 공포의 침묵이 깨질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야당 대표가 주도한 450㎞ 도보 행진, '정의 장정'을 완주하는 9일 집회에 100만에 가까운 인파가 모였기 때문이다.

외즈도안 국장은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면서 "터키 민주주의는, 터키인은 외국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허약하지 않다"고 말했다.


tr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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