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자매 대국 가능' 김채영의 행복한 바둑 가족

입력 2017-07-12 16:59  

'부녀·자매 대국 가능' 김채영의 행복한 바둑 가족

김채영 가족 인터뷰 "자매가 대국할 때는 응원 안 해요"

"자매가 결승에서 대국하고 아버지는 심판 보는 게 소원"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김채영(21) 3단은 12일 2017 엠디엠 한국여자바둑리그 최우수선수상(MVP)을 거머쥐고도 "저같이 평범한 사람이 MVP를 받아서 너무 기쁘다"고 겸손한 소감을 남겼다.

서울 더 리버사이드 호텔에서 열린 여자바둑리그 폐막식이 끝난 뒤 만난 김채영 3단은 "어렸을 때부터 최정, 오유진 등 두각을 드러낸 선수들이 앞서 가서 기죽을 때가 많았다"며 최고의 자리에서도 몸을 낮춘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사실 김채영 3단은 바둑에서 아주 특별한 존재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프로 바둑 가족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김채영 3단의 친동생은 김다영(19) 2단이다. 김채영 3단이 주장으로 있는 포스코켐텍을 이어 여자바둑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여수 거북선의 주장이 바로 김다영 2단이다.

이번 리그 챔피언결정전 3차전 1국에서는 자매 맞대결이 펼쳐지기도 했다. 언니가 동생을 꺾으며 승기를 포스코켐텍 쪽으로 가져왔다.

희비는 엇갈렸지만, 자매가 올해 여자바둑리그 우승과 준우승을 휩쓸었다.

자매의 아버지는 현역 프로 바둑 기사인 김성래(53) 5단이다. 어머니는 아마 바둑 강사인 이소윤(52) 씨. 부모님은 강원도 영월에서 함께 바둑 학원을 운영 중이다.

2011년 김채영 3단의 입단으로 국내 바둑 2호 부녀 기사가 탄생했다. 권갑룡·권효진 부녀에 이어 15년 만이었다. 여기에 김다영 2단이 2015년 입단하면서 국내 최초의 자매·세 부녀 기사가 나오게 됐다.

일본에도 자매 기사가 있지만, 아버지까지 프로 기사인 경우는 없다고 한다.

김채영 3단의 MVP 수상과 김다영 2단의 활약으로 이들 가족은 더욱 빛나게 됐다.






김성래 5단은 "제 소원은 한 가지다. 자매가 결승에서 대국하고, 저는 입회인으로서 심판하는 것"이라며 "단체전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챔피언결정전에서 자매가 대결했으니 제 소원의 반은 이뤄진 셈"이라며 싱글벙글 웃었다.

자매 대결이 즐겁지만은 않다.

김채영 3단은 "가장 대결하기 싫은 상대는 동생이다.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바둑 공부를 할 때나 휴식을 취할 때나 24시간 붙어 있는 유난히 돈독한 우애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김채영 3단은 "이번 리그에서도 마주치기 싫었는데, 그래도 둘 다 이길 만큼 이기고 올라온 결승에서 마주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며 "다른 팀이 오는 것보다는 동생 팀이 올라오는 게 더 좋았다"고 돌아봤다.

김다영 2단은 "결승에서 제가 이겼으면 좋았을 텐데 살짝 아쉽다"면서도 "다른 사람이 우승하는 것보다 언니가 우승하는 게 훨씬 나으니까 괜찮다"며 언니의 팀 우승과 MVP 수상을 기뻐했다.

자매가 맞대결하면 누구를 응원하느냐는 물음에 어머니 이 씨는 "응원을 안 한다. 진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할 뿐"이라며 "어차피 하나는 이기고 하나는 지는 거니 똑같다"고 답했다.

자매 대결뿐 아니라 부녀 대결도 성사될 수 있다.

여류기사와 시니어 기사가 겨루는 '지지옥션배 신사 대 숙녀 연승대항전' 대회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예선전에서는 세 부녀가 한 대국장에서 본선 진출에 도전하는 진풍경이 그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김성래 5단이 막판에 탈락하는 바람에 부녀 동반 본선 진출은 이뤄지지 못했다.

남녀가 한 팀을 이루는 페어 바둑에서 부녀가 협동 작전을 펼치는 장면도 그려볼 수 있다.

김성래 5단은 "저는 딸과 페어 바둑을 하고는 싶은데, 딸들이 극구 사양하더라"라며 서운해했다.

이에 김채영 3단이 "제 파트너가 국내순위 2위 신진서 8단인데 어떻게 다른 파트너를 구하겠나"라고 명쾌한 이유를 내놓자 온 가족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 씨는 자매가 함께 바둑 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흐뭇하다.

자매가 어렸을 때 미술학원을 운영했던 이 씨는 학원에서 온종일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딸이 안타까워 처음 바둑을 시켰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김채영 3단에게만 바둑을 가르쳤는데, 후에 '자매가 항상 가깝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 김다영 2단에게도 바둑을 가르쳤다. 이 씨는 "둘이 각자 결혼해서 떨어지더라도 경기할 때는 만나지 않겠나"라고 기대했다.




김성래 5단과 이 씨는 처음 가정을 꾸릴 때는 이런 바둑 가족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결혼 당시 김성래 5단은 프로 기사가 아니었다. 이 씨는 미술을 했다.

그러나 직장인 아마바둑 기사로 활동하던 김성래 5단이 바둑에 대한 열정으로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1996년 12월 '늦깎이 입단'을 했다.

사표를 던진 시점은 첫째 채영이 태어난 지(1996년 1월)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김성래 5단은 "퇴사한 지 1년도 안 돼서 입단했다"며 딸이 복덩이라고 말했다.

또 아내 이 씨의 내조에도 고마워했다. 이 씨는 "몸조리 중에 남편이 퇴사해 황당하기도 했지만, 응원해줬다"고 떠올렸다.

이 씨는 미술학원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남편의 바둑 학원 경영을 도왔고, 지금은 아마바둑 실력자로서 초보자 강의도 맡고 있다.

이 씨는 "오늘 딸들을 축하해 주려고 학원 문도 닫고 만사를 제치고 서울로 달려왔다"며 "딸들이 엄마와 떨어져 살면서도 잘 성장해줘서 너무나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딸들이 받은 축하 꽃다발 더미를 대신 든 김성래 5단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김성래 5단은 "요즘 우리 가족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도 행복하다"며 더 환하게 웃었다.

abb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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