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빚는 조각가 심문섭 "작가가 1부터 100까지 채워서야…"

입력 2017-07-13 14:23  

자연 빚는 조각가 심문섭 "작가가 1부터 100까지 채워서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서 원로소개 시리즈 마지막 전시




(과천=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어둠이 내린 바다에 나무배 여러 척이 떠 있다. 조각가 심문섭(74) 회고전 '자연을 조각하다'가 열리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1전시실에 들어서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풍경이다.

"사람이 살면서 몇 번의 찬스를 얻게 되는데, 통영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내 인생의 첫 번째 찬스였습니다. 자연 속에서 자라며 교감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그렇지요."

13일 전시장에서 만난 원로 조각가가 50년 작가 인생을 돌아보며 한 말이다.

전시 제목이 말하듯이 작가는 나무, 돌, 흙, 쇠 등 자연에서 얻은 재료에 최소한의 손만 댐으로써 물성(物性) 자체를 드러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 왔다.

작품에서 언뜻 덜 다듬은 듯한, 투박한 느낌을 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작가 등용문이었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1960년대 말부터 3차례 수상한 뒤 '진짜 내 것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작업이었다.

"1부터 시작해 100까지 전부를 만드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 아니라는 생각에 다다랐습니다. 사물과 사물이 만나 교감하고 충돌하고 어울리고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단 생각이었죠. 여태까지는 작가 생각대로 대상을 모두 밀어붙여서, 보는 사람도 다 작가 뜻대로 생각했지 않습니까. 거기서부터 일탈하자 싶었어요."






이러한 생각은 지난봄 발간한 시·사진집 '섬으로'에서 더 명확히 읽어낼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소재가 결정될 때 이미 (작품은) 완성된 것과 같다. (중략) 내게 중요한 것은 소재와 관계하는 것과 관계하는 방법이다."

소재를 중시하는 예술관은 자연이 빚은 바위며 나무며 바다를 보며 자란 경험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전시장 초입에 설치된 1970년 초 '관계' 시리즈는 날 것의 재료와 인간의 우연한 행위가 빚어낸 순간을 포착한 작품들이다. 1973년 파리비엔날레에 출품됐던 작품 '관계'는 지금 보아도 흥미롭다. 1973년부터 20여 년간 계속된 '현전' 시리즈는 각종 재료를 문지르고 긁고 두드리거나 충격을 가하는 방식으로 작업한 것들이다.

"인간과 저항 없이 섞일 수 있는" 나무를 깎아 만든 '목신', 나무에 철을 접목한 '메타포' 등의 시리즈가 이어진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심문섭 작품은) 자연의 근원에 가까운, 자연이 빚은 조각"이라면서 "자연의 형상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그것 자체로' 있는 현상을 드러낸다는 의미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4년 전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회고전 제안을 듣고 "나는 현역인데 무슨 회고전을 해"라는 생각부터 대뜸 들었다고.

"50년이 결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모자라지도 않았습니다. 남지도 않았습니다. 내일은 또 다른 새로운 것이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냅니다."

10월 9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는 원로작가를 소개하는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의 마지막 행사다. 문의는 ☎ 02-2188-6000.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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