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보선 세 번째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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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시인 심보선(47)이 세 번째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문학과지성사)를 냈다. 문화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자이면서 여러 사회운동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 온 그다. 이런 이력과 더불어 맨 앞에 실린 '소리'에서 호출하는 청자들의 면면은 고통받고 슬퍼하는 이들에게 말을 거는 행위로서의 시편이 이어질 것임을 짐작게 한다.
"들어라/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한 것을 모두 증오했기에/ 자신까지 혐오하게 된 장자여// 들어라/ 실패한 자여/ 떠돌 만한 광야가 없어 제자리에서 맴도는 개 같은 인생이여// (…)// 들어라/ 인적이 드문 밤거리여/ 쨍그랑 병 하나가 깨지면 순식간에/ 모든 집의 불빛이 꺼지는 첨단의 도시여" ('소리' 부분)
"도대체 이곳에서 어떤 끔찍한 일이 있었던 걸까요"('극장의 추억' 부분) 시인은 불화와 갈등, 그 결과로서 고통과 헤어짐을 기록한다. 각자의 상처를 간직한 청자들을 불러들인 다음, 이름이 뭔지 묻고 "같은 목록에서 이제 내 이름을 찾아보라" 하다 보면 "그날 거기서 어떤 변화가 시작"('근육의 문제')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는다. 시로 연결된 일종의 공동체를 도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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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환멸로 인해 우리는 좀더 가까워진 셈이라네// (…)// 그렇다네, 내가 떠나는 자네에게 해줄 것은 이렇게 읽고 쓰는 일뿐이라네/ 그리고 조금씩 기억하는 일뿐이라네" ('멀리 떠나는 친구에게' 부분)
시인은 말한다. "사람들이여, 나는 시인이랍니다./ 부디 내게 진실을 묻지 말고 황금을 구하지 말아요./ 나는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불행인 줄 몰라요."('나는 시인이랍니다' 부분)
그러나 관계들의 집합인 공동체라는 주제를 사이에 놓고 심보선의 시는 사회학과 맞닿는다. "우리에게 벌어진 일을 잊지 않기 위해"('예술가들') 쓰기는 시인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쌍용자동차 해고자 문제를 시로 써 기록한다.
"2009년 4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수많은 기념일, 휴일, 생일, 투표일, 하루하루/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을 자축하고,/ 안온한 일상을 수호하고,/ 행복의 방정식 안에서 맴돌며,/ 세계의 비참을 외면하고,/ 인간의 절규에 귀를 닫고 살고 있을 때,/ 스물두 명의 인간이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왜 죽어야만 했습니까?/ 누구든 말해주세요. 그들은 누구입니까?" ('스물세번째 인간' 부분) 271쪽. 8천원.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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