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방' 중 4대강 감사 이어 KAI 압수수색으로 방산비리 '메스'
'국방개혁' 내건 송영무 장관 취임 맞춰…윤석열 부임 후 첫 대형 비리 수사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검찰이 14일 한국항공우주(KAI)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적폐청산'을 내건 문재인 정부의 대형 사정수사가 본격적으로 개막했다.
수사의 출발점은 방위산업체의 기업 비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이를 지렛대 삼아 앞선 이명박·박근혜 정권 인사들의 권력형 비리로까지 확대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박찬호 부장검사)는 원가조작을 통해 개발비를 빼돌려 챙긴 혐의(사기)와 관련해 KAI의 경남 사천 본사와 서울사무소를 압수수색했다.
이번 압수수색은 문 대통령이 이명박 정권의 대표적 문제 중 하나로 지목해 온 방산비리를 검찰이 처음 정조준했다는 점에서 향후 수사 확대 여부에 이목이 쏠린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이던 지난 4월 30일 서울 신촌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이명박 정부에서의 4대강 비리, 방산 비리, 자원외교 비리도 다시 조사해 부정축재 재산이 있다면 환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문 대통령 당선 이후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들 세 가지 문제를 엮은 이른바 '사자방'(4대강 비리, 자원외교 비리, 방산비리)에 대해 대대적인 사정에 나서리라는 관측이 파다했다.
실제 문 대통령은 5월 22일 '5호 업무지시'로 일부 4대강 보의 상시 개방과 정책감사를 지시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검찰이 방산비리 혐의를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한 것이다. 4대강 문제는 당장 검찰 수사로 풀어나갈 성질은 아니라는 점에서 KAI 수사가 사실상 이번 정부 차원의 첫 대형 수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검찰은 지난 2014∼2015년 진행된 감사원 감사와 방산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의 수사 결과 등을 토대로 KAI 연구개발 과정의 비위 혐의에 대해 광범위한 내사를 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감사원이 밝힌 수리온 헬기 개발 사업의 사업비 부풀리기 의혹 외에도 전반적인 연구개발 사업에서 비슷한 비리 의심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KAI 고위 임원들이 친인척 관계로 얽힌 하청업체와 짜고 원가를 부풀리는 과정에서 횡령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들여다볼 것으로 관측된다.
또 17억원어치 상품권의 용처가 불분명해 정·관계 로비에 쓰였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아울러 CFO(재무 담당 임원) 출신인 하성용 KAI 사장이 해외거래 명목의 가짜 법인계좌를 만들어 환율을 허위로 계산한 뒤 차액 10억여원을 빼돌린 정황이 감사에서 포착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이 부분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조사 과정에서 단서가 포착된다면 박근혜 정권 인사들과 유착된 권력형 비리로까지 수사의 폭이 넓어질 가능성이 있어 주목된다.
방산업계 안팎에서는 그간 TK(대구·경북) 출신인 하 사장이 박근혜 정부와 밀접한 관계라고 보는 시선이 많았다.
KAI에서 2011년 퇴사했다가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사장으로 '금의환향'한 하 사장은 지난해 연임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했다.
업계에서는 감사원 감사 이후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배경에 청와대와의 이런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불거지기도 했다.
다만 한편으로는 "KAI에 대해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기보다는 국산 훈련기인 T-50의 미국 수출 등 중요한 계약을 준비하는 상황이라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을 뿐"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이번 수사에서 검찰이 유의미한 증거를 확보한다면 방위사업청 등 KAI 외부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지켜볼 부분이다.
이 경우 안팎의 예상대로 검찰의 칼날이 방산비리 전반을 겨누게 된다. 이를 통해 전날 취임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일성으로 내건 '국방개혁' 분위기도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점쳐진다.
반면 "여러 풍파를 겪는 동안 방산업계도 많이 투명해진 만큼,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더라도 대규모 비리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번 수사는 이전 정부에서 검찰 수뇌부와 갈등 끝에 좌천됐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윤석열 지검장이 지휘하는 첫 번째 대형 비리 사건이라는 점에서도 이목을 끈다.
윤 지검장은 5월 부임한 이후 미스터피자 창업주인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의 '갑질 논란'을 수사해 구속한 바 있다.
민생과 직결된 사안을 첫 타깃으로 삼아 달라진 검찰상을 알리며 '워밍업'을 마쳤다면, 이제 본격적인 대형 비리를 척결하는 '본 게임'에 들어가는 형국인 셈이다. 방산비리 수사팀이 특수부를 관장하는 3차장검사 산하인 점에서 '특수통' 윤 지검장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많이 해왔던 분야를 첫 대상으로 삼아 수사를 총지휘하게 됐다.
검찰은 KAI가 앞으로 수행할 여러 사업을 위해서라도 어정쩡한 결론을 내기보다는 차제에 관련 의혹을 말끔히 정리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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