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4년 빼고 연례행사…"양측 모두 이기적, 공동체의식 부족"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임금협상 장기화로 협력업체의 경영난과 고객 불편을 초래한 데 책임을 통감한다. 노사가 이제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거듭나겠다"
지난해 10월 현대자동차 노사는 24일에 걸친 파업 진통 끝에 겨우 임금협상을 타결한 뒤, 공동명의로 이런 발표문을 읽고 국민 앞에서 '변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올해 여름, 지금까지 현대차의 임단협 전개 상황만 보자면 이 약속은 '빈말'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4월 상견례를 시작으로 노사가 협상에 들어갔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노조는 지난 6일 임단협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14일까지 이틀째 진행된 투표에서도 노조는 과반 찬성으로 파업을 가결했다. 지난해와 똑같은 수순으로 '6년 연속 파업'을 향해 치닫는 상황이다.
◇ 현대차 "2012년 이후 파업 피해 7조3천억"
지난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17년 동안, 현대차는 무려 13차례의 파업을 겪었다.
2009~2011년 4년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파업이 벌어진 셈이다.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현대차=분규·파업'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린 지 오래다.
기업 이미지의 추락뿐 아니라, 파업에 따른 실제적, 경제적 손실도 막대하다.
현대차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해 24일간 파업으로 빚어진 생산 차질 규모는 14만2천대, 3조1천억 원으로 집계됐다.
2012년 이후 ▲ 2012년(파업 13일) 생산 차질 8만2천 대, 차질액 1조7천억 원 ▲ 2013년(10일) 5만 대, 1조200억 원 ▲ 2014년(6일) 4만7천 대, 1조300억 원 ▲ 2015년(3일) 2만1천 대, 4천500억 원 ▲ 2016년(24일) 14만2천대, 3조1천억 원의 피해가 파업 때문에 발생했다.
최근 5년간 파업 피해액만 7조3천억 원에 이른다는 얘기다. 여기에 납품업체 등 현대차 협력기업들의 피해까지 더하면, 현대차 파업은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주요 '위험 요인'이다.
◇ "사측은 경영정보 투명 공개하고, 노조는 기업 어려움 공감해야"
현대차 노사가 이처럼 해마다 극단적 갈등을 겪는 근본원인은 단순히 '임금 인상 폭 계수 차이'가 아니라 '노사 불신'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조는 항상 처음에 현 경영 여건상 부담스러운 수준의 임금 조건과 수많은 임금 외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파업 결의와 실제 파업 등으로 협상력을 키운 뒤 최대한 많이 얻어내려는 전략을 펼친다.
예를 들어 올해의 경우 노조는 임금 15만4천883원(호봉승급분 제외) 인상, 순이익 30%(우리사주포함) 성과급 지급에 4차 산업혁명과 자동차산업 발전에 대비한 '총고용 보장 합의서' 체결 등까지 요구하고 있다.
이런 노조에 대해 회사는 또 항상 "지금도 급여 수준이 높다", "백화점식 요구사항이 문제다", "회사 경영 사정이 나쁘다"는 주장을 반복한다.
이런 구시대적 협상 행태와 전략을 수십 년간 되풀이하다 보니, 노사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사측은 노조의 요구를 '협상 카드'나 '뻥튀기'로, 노조는 회사의 '경영위기' 호소를 '엄살'로 치부하면서 합리적 협상 자체가 불가능해졌다는 분석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법 전문)는 "현대차 분규는 사회 구성원들 간 신뢰 부족이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며 "사용자는 노동자를 믿고 투명하게 경영 상황을 설명할 여유가 없고, 노동자는 그런 사측을 믿지 못하니 어려움을 공감하지 못하고 무리한 임금·근로조건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노사 모두 공동체 의식이 결여돼있는 셈"이라며 "'노는 노, 사는 사' 식으로 서로를 배타적 존재로 인식하는 이기적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 현대차 분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shk99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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