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사.이.다] 왜 맥아더가 아니고 워커인가?

입력 2017-07-17 11:40  

[클릭! 사.이.다] 왜 맥아더가 아니고 워커인가?

미군기지 평택 이전으로 다시 기억하는 워커장군

'사진으로 이렇게 다시 본다'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더글러스 맥아더와 월튼 워커. 한국전쟁에서 활약한 두 미국 전쟁 영웅입니다.


전후의 많은 한국인은 한국 전쟁하면 먼저 인천상륙작전의 맥아더를 떠올립니다. 지난해 만들어진 영화 '인천상륙작전'이나, 1981년의 '오! 인천' 등은 물론 수없이 제작된 다큐멘터리에서 그의 활약이 반복돼 방영되면서 우리에게 깊이 각인된 덕분입니다.


일주일 전인 지난 11일, 미 8군사령부는 경기도 평택기지 신청사 개관식을 시작으로 '캠프 험프리스'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날 개관식 행사의 백미는 워커 장군 동상 제막식이었습니다.


이 동상은 2010년 6월, 서울 용산기지에 처음 세워진 것을 그대로 옮겨온 것입니다. 용산기지 이전과 평택기지 개관은 워커 장군 동상 이전 및 제막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동상의 주인공은 왜 우리가 더 잘 아는 맥아더(당시 원수)가 아니고 워커(당시 중장)일까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급파된 미8군의 초대 사령관이 워커이기 때문입니다. 맥아더는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습니다.


워커는 1950년 7월 13일 전선에 급파됩니다. 그는 낙동강 전선을 지지하며 "부산으로 밀리면 끝장이다. 오직 사느냐 죽느냐(STAND OR DIE)밖에 없다"며 야전을 휘젓고 다닙니다.

결국, 그는 낙동강 라인을 사수했습니다. 이 라인은 그의 이름을 따 '워커라인'으로 불립니다. 워커라인 덕택에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의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해 12월 23일, 함께 참전 중이던 아들 샘 워커 대위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이를 기려 2009년에는 양국의 노병들이 사재를 털어 그가 사망한 도봉역 인근에 표지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한국전쟁과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워커는 우리가 명백히 기억하고 추모해야 할 한국 현대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아, 글을 맺으면서 한 가지 더….

서울 동쪽의 대표적인 특급호텔로서 아차산 아래 위치한 워커힐호텔은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호텔입니다.


doh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