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19년 전 발생한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스리랑카인 K 씨에게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따라 K 씨는 조만간 본국으로 강제 추방되고,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게 됐다. 이 사건은 발생 13년 만에 검찰이 재수사로 기소한 것이지만 결국 증거부족으로 처벌하지 못해 안타까움이 남는다. 우리 공소시효 제도의 한계를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K 씨는 다른 스리랑카인 공범 2명과 함께 1998년 10월 17일 새벽, 대학 축제를 마치고 귀가하던 여대생 정 모 씨를 구마고속도로 아래로 데려가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기소됐다. 정 씨는 고속도로에서 트럭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 주변에서 정 씨 속옷이 발견돼 성폭행이 의심됐는데도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을 내렸다. 13년 뒤인 2011년 다른 여성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붙잡힌 k씨를 유전자(DNA) 검사한 결과, 정 씨 속옷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해 묻힐 뻔했던 사건이 재조명을 받았다. 검찰은 재수사 끝에 2013년 K 씨를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강간죄와 특수강간죄 공소시효가 모두 지나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도강간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성폭행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K 씨가 정 씨 가방 속 금품 등을 훔쳤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1·2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2년여의 심리 끝에 2심 결론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재수사 과정에서 국내 스리랑카인을 전수 조사해 K 씨 공범으로부터 범행을 전해 들었다는 증인을 확보해 법정에 세우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DNA에다 증인까지 확보해 범죄의 실체를 밝혀냈는데 법이론으로 진실을 가리는 게 과연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번 판결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헌법과 형사소송법 대원칙과 기존 판례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 같다.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피해자나, 단순 교통사고로 종결한 경찰에 끈질기게 이의를 제기해 성폭행 수사를 끌어낸 유족 입장에서 억울하기 이를 데 없는 결과일 듯하다. 하지만 성폭행 가능성은 충분히 인정되나 공소시효가 지났고, 강도 혐의에 관한 증인과 참고인 진술도 타인에게 들은 전문진술에 의존한 것이어서 진실성을 믿기 어렵다는 게 판결의 취지다.
검찰은 K 씨를 스리랑카 현지 법정에 세워 단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국내와 달리 스리랑카에선 강간죄 공소시효가 20년이다. 그러나 스리랑카는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가입하지 않아 K 씨를 처벌하려면 별도로 사법공조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스리랑카 당국이 우리 정부의 뜻을 받아들여 뒤늦게나마 사법정의가 구현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번 대법원 판결은 강력사건의 초동수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일깨워줬다.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은 처음부터 외국인을 염두에 두지 않고 수사를 진행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경찰은 또 사고 현장에서 불과 30여m 떨어진 곳에서 정 씨 속옷이 발견됐는데도 두 달 가까이 수사를 끌다가 단순 교통사고로 종결했다. 경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외치기 전에 국민이 신뢰할 만한 수사능력을 갖추기 위해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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