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말레이시아 정부가 1990년대 초 발생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대형 외환 스캔들을 20여 년 만에 재조사하기로 했다.
19일 일간 더스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국왕인 술탄 무하마드 5세는 전날 말레이시아 중앙은행(BNM) 외환 스캔들에 대한 조사위원회 설립을 공식 승인했다.
BNM 외환 스캔들은 1990년대 초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이 투기성 외환거래에 뛰어들었다가 천문학적 손실을 본 사건이다.
당시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의 외환시장에 대한 위험 노출액(익스포저)은 보유 외환의 5배가 넘는 2천700억 링깃에 달했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은 이 과정에서 약 90억 링깃(2조3천5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초 해당 사건을 재조사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 팀을 구성한 말레이시아 정부는 실제 손실 규모가 440억 링깃(11조5천억원)으로 공식 발표의 5배에 이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부 당국자는 "예비조사 결과 내각과 의회에 보고된 것보다 손실 규모가 더 컸던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조사위원회는 앞으로 3개월간 활동하며 당시 정부가 사건을 축소·은폐했는지를 밝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92세의 나이로 정계에 복귀해 야권 지도자로 변신한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최근 야권연합 희망연대(PH) 의장으로 선출됐으며, 야권의 유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된다.
그는 한때 집권 여당연합 국민전선(BN)을 이끄는 나집 라작 현 총리의 후견인이었지만, 나집 총리가 국영투자기업 1MDB에서 나랏돈 수백억 링깃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야권에 합류해 나집 총리의 퇴진 운동을 벌였다.
현지 전문가들은 말레이시아 정부·여당이 내년 중순으로 예정된 차기 총선을 앞두고 마하티르 전 총리 집권 시절 발생한 금융 스캔들을 부각함으로써 나집 총리의 비리 의혹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려 한다고 보고 있다.
집권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 전 고위 당직자였던 타우픽 이스마일은 "마하티르 전 총리는 전임자들의 공격을 받았을 당시 그들의 과거를 들춰내 반격한 바 있다"면서 "나집 총리 역시 똑같이 행동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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