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쪽의 윤리"…하루키 소설의 '피해자 역사관'

입력 2017-07-19 15:09   수정 2017-07-19 15:14

"죽이는 쪽의 윤리"…하루키 소설의 '피해자 역사관'

신간 '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68)는 일본의 과거를 직시하고 있는 것일까. 정치가도 역사학자도 아닌, 그저 전후 일본 땅에서 태어났을 뿐인 '무국적 지향' 소설가에게 넘치는 질문 같기도 하다.

그러나 하루키는 최근 몇 년 새 부쩍 사회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고 최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의 난징(南京)대학살 서술이 일본과 한국 양쪽에서 화제로 떠올랐다. 대답은 하루키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독법이 될 수 있다.

만화칼럼니스트 선정우는 문화비평가 오쓰카 에이지(大塚英志)의 '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북바이북)를 번역·출간하며 후기에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한 오쓰카의 평을 소개했다.

오쓰카는 일본 잡지 '주간 포스트'에 실은 서평에서 난징대학살 서술을 두고 하루키를 공격하는 일본 역사수정주의자들은 물론 하루키의 이른바 '피해자 사관'도 비판한다.

우선 하루키가 소설에 불편한 역사적 소재를 끌어들인 건 새롭지 않다고 그는 지적한다. '양을 쫓는 모험'에 메이지 시대 시작된 홋카이도 개척민 문제, '태엽 감는 새'에는 1939년 일본 관동군과 몽골·소련군이 충돌한 노몬한 사건이 등장한다.

오쓰카는 "역사를 신화적인 '수난'의 상징으로 인용해온 행위의 반복 그 이상은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대로인데 난징대학살 하나만으로 기피해버리는 여론도 한심하다"고 쓴소리를 한다.

하루키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죽임을 당한 입장에 서서 일본을 규탄하고 있지는 않다"며 "죽이는 쪽의 윤리"라고 단언한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작중 인물 아마다 쓰구히코는 1937년 중일전쟁에서 트라우마를 얻고 돌아와 자살한다. 오쓰카는 "난징대학살에서 '죽였던' 쪽의 사람이 죽였다는 사실 자체에 상처를 입는다는 식의 '피해자 사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꼬집는다.






대담집 '오쓰카 에이지: 순문학의 죽음·오타쿠·스토리텔링을 말하다'에서 그는 일본 우익들에게서도 발견되는 피해자 사관을 설명한 바 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투하로 미국에 대해 피해자라는 의식을 갖게 됐다면서 "피해자 의식 속에서 역사를 보려고 하는 한 역사의 본질을 볼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오쓰카는 피해자 사관이 바탕에 깔려 있는 하루키의 소설을 오히려 역사수정주의와 같은 맥락에 놓는다. '부서진 나'를 그리고 있지만 부서지게 된 구체적 이유는 "외동아들이었다는 사실" 말고는 없다. 이 때문에 "한국의 비판이나 아사히신문 때문에 '상처를 입은 듯한 느낌'"을 받는 일본 우파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제까지 신화적인 '수난'처럼 다루어왔던 제재를 상징이나 우화가 아니라 '역사소설'로 쓰는 편이 좋을 연령이다. 그러나 결코 그러한 '성숙'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작가로서 그가 진심을 다하는 방식이긴 하다."

오쓰카는 '기사단장 죽이기'의 역사관에 대한 냉소적 평가와 달리 책에서는 작품 자체의 구조적 특징을 객관적으로 분석한다. 하루키 소설들을 캠벨의 단일신화론과 오이디푸스 신화 등에 대입해 들여다보고 이런 보편적 이야기 구조를 따른 게 세계적 성공의 비결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비판은 하루키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미야자키 하야오로 대표되는 저패니메이션을 두고 일본문화의 훌륭함이 세계에 알려졌다고 기뻐하는 일본식 '국뽕'을 향한다. "그저 '구조밖에 없는 이야기'를 통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고, 혹은 '일본'이나 '일본인이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알려졌다고 믿어보았자 의미가 없다. 거기에는 '구조밖에 없는 일본'이나 기껏해야 '모태 회귀하는 일본'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312쪽. 1만6천원.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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