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 품은 그곳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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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일제강점기 수많은 여성이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다. 어떤 이들은 고통과 절망 속에 죽어가고, 어떤 이들은 수치심에 목숨을 끊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해방 이후에도 말을 삼킨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야 했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성노예 피해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한 공간이다. 그곳에는 긴 시간이 흘렀어도 아물지 않은 깊은 상처가 오롯이 남아 있다.
"17살에 끌려가서, 그 일을 일일이 말로 다 못합니다. 할 수가 없어요. 이 짧은 시간에는. 어떻게 일일이 말로 합니까.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어요. (중략) 무슨 짐짝 끌어가듯 끌고 가서 자기네 맘대로 쓰고 싶으면 쓰고 고장이 나서, 말하자면 병이 나든가 그러면 버려버리고 죽여버리고…"
2016년 개봉해 큰 반향을 일으킨 영화 '귀향'.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인 한 할머니가 1991년 한국인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증언한 고 김학순(1924~1997) 할머니의 인터뷰 장면을 TV를 통해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순진무구한 어린 소녀들이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 끌려가 겪은 어둡고 참혹하고 슬픈 장면이 화면을 채워간다.
일본군 위안부는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동원한 성노예를 말한다.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출신 여성이 포함됐고, 식민지였던 우리나라 여성이 가장 많이 동원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5만~3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에 등록된 한국인 피해 신고자 수는 239명이고 이 중 37명이 생존해 있다.
경기도 광주 퇴촌의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 있는 나눔의 집 부설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은 세계 최초 성노예를 주제로 하는 인권박물관이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고발하고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면서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지어져 1998년 8월 14일 개관했다. 지상 2층, 지하 1층, 총면적 343㎡ 규모의 건물은 대동주택이 기증했다. 운영 재원은 박물관 건립 취지에 공감하는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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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일을 역사에 남겨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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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관은 양쪽의 건물 2개 동과 이를 연결하는 지하공간, 야외 전시공간과 공연장으로 구성돼 있다. 역사관 야외 전시공간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할머니들의 흉상. 김학순, 강덕경, 김순덕, 박두리 등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이 방문객을 응시한다. 그들이 겪은 일은 참혹했지만 흉상 속 할머니들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흉상 뒤편에는 한복을 단정하게 입은 소녀상이 서 있다. 고 김순덕 할머니가 그린 '못다 핀 꽃' 그림을 형상화해 만든 것이다.
역사관 안으로 들어서자 정면 전시물에 담긴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 두어야 한다"는 고 김학순 할머니의 말이 가슴을 친다. 이 말에는 역사관의 설립 목적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김학순 할머니는 일제의 만행을 역사에 기록하기 위해 아무도 선뜻 나서서 하지 못할 일을 시작한 것이다.
계단을 오르면 첫 번째 전시공간인 '역사의 장'을 만난다. '일본군 위안부란 무엇인가' '시대 상황과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성립' '어떤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나' 등 일본군 위안부에 관해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 공간이다.
당시 위안부로 끌려간 이들은 10대 소녀가 대부분으로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거나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다"는 취업알선자의 꾐에 빠져 위안소로 끌려간 경우가 많았다. 관리나 경찰, 군에 의해 납치되거나 위안소 업자, 모집인에 의해 유괴 또는 인신매매되는 경우도 있었다.
중국과 버마(현 미얀마) 국경지대에서 포로가 된 조선인 위안부, 위안소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일본군 병사들의 사진과 1938년 작성된 일본군 위안부 모집에 관한 공문서도 볼 수 있다.
1층으로 내려와 아시아 각국에서 사용됐던 위안소 건물의 흑백 사진을 보고 발걸음을 옮기면 두 번째 공간인 '증언의 장'이다. 이곳은 일본군 위안소와 위안소에서의 생활을 주제로 한다. 위안소 규정, 사용 시간과 요금표, 일본군 주둔지에서 화폐 대신 사용한 군표, 일명 '삿쿠'라 불린 일본군의 콘돔 등을 담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위안소의 위치를 표시한 약도도 볼 수 있다.
한쪽에는 '오키나와 전쟁의 위안부 피해'라는 제목의 별도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는 19살 때인 1944년 "낙원 같은 곳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소개업자에게 속아 오키나와에서 위안부로 고통을 겪은 뒤 해방 후에도 끝내 고향에 가지 못한 고 배봉기 할머니의 숨겨졌던 이야기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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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픔과 분노 느껴지는 위안소
지하는 '체험의 장'이다. 좁은 복도의 벽면에는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낯선 손 하나가 여린 소녀의 팔목을 붙잡고 낚아채는 모습을 그린 김순덕 할머니의 '끌려감', 처녀들을 태운 배가 새파란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을 묘사한 이용녀 할머니의 '끌려가는 조선처녀' 등 그림 하나하나에는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작품들은 1993~1995년 할머니들이 정서적 안정을 위한 미술심리치료에 참가할 때 그린 것으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과 슬픔, 일제의 만행에 대한 분노가 절절하게 표현돼 있다.
지하 통로 중앙쯤에 있는 모니터에서는 할머니들이 그 시절 겪은 아픔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증언한다. 모니터 옆에는 실물 삿쿠와 군표가 전시돼 있다.
모니터 맞은편에는 위안소 모형이 있다. 위안소 출입구로 향하는 좁은 통로 벽면에는 위안부 피해자의 일본식 이름을 적은 문패가 걸려 있다. 어두침침한 위안소에는 허름하고 조그만 침대 하나와 질 세척을 위한 대야, 철제 양동이가 놓여 있다.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은 이렇고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인권을 유린당하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 문제
복도를 지나 1층으로 오르면 네 번째 공간인 '기록의 장'이다. 이곳에선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북한의 피해 여성이 소개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거짓말에 속거나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 고통을 겪었다.
한쪽에는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모래가 담긴 대야에 꽃이 꽂혀 있고, 정성스럽게 접은 종이학들, 할머니들에게 쓴 한 줄 편지 등이 전시돼 있다.
한 여고생은 "그 시절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힘든지 실제 겪지 않아서 얼마나 힘든 줄은 잘 모르는 철부지 우리들이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위로와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이렇게 편지 드려요. 할머니 화이팅!"이라고 썼다.
한쪽에는 고 김학순 할머니의 생애를 알려주는 전시물이 있다. 1992년 1월 8일부터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열리고 있는 수요 시위 사진과 할머니들의 얼굴이 담긴 흑백 사진도 전시돼 있다.
마지막 공간인 '고발의 장'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피해자들의 법적 대응 과정을 보여준다. 강제동원을 공식 부인하는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게시물도 볼 수 있다. 1993년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과 인권침해를 인정한 일본 정부의 공식견해인 '고노 담화' 내용은 이 공간의 주요 콘텐츠다.
역사관 뒤편에는 진흙탕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할머니 조각상이 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 문제를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조각상 뒤편에는 공식 사과를 받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이 잠들어 있다. 할머니들은 영화 '귀향'의 마지막 장면처럼 꿈에 그리던 가족을 다시 만났을까.
나눔의 집은 할머니들의 유품, 영상과 그림 등을 전시하는 유품기록관과 추모공간을 올해 안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연간 1만여 명에 달하는 국내외 방문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사관 전시물에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설명이 병기돼 있다.
▲ 관람 시간 = 오전 10시~오후 5시(매주 월요일, 명절 연휴 휴관)
▲ 관람 요금 = 일반 5천원, 어린이·청소년 3천원, 65세 이상과 장애인 무료
☎ 031-768-0064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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