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보당국·사우디 소식통 "전 왕세자 약물중독 의혹 제기하며 압박"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국왕이 조카 모하마드 빈나예프 제1왕위계승자(왕세자) 대신 자신의 친아들을 왕세자로 교체했을 때, 전·현 왕세자는 덕담을 건네며 훈훈한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나 이후 빈나예프 전 왕세자가 가택 연금 상태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언뜻 원만한 듯 보였던 사우디 왕실의 왕세자 교체가 실은 젊은 왕자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왕세자가 쫓겨나면서 이뤄진 것이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더타임스 등 외신들은 익명의 미 정보당국 관계자들과 사우디 왕실 사정에 정통한 현지 소식통들을 인용, 왕세자 교체 과정에서 빈나예프 왕자가 살만 국왕과 차기 왕세자의 측근에 의해 감금·협박당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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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차기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던 빈나예프 왕자는 살만 국왕의 조카로, 그를 제치고 왕세자에 오른 살만 국왕의 셋째 아들 모하마드 빈살만 알사우드(31) 왕세자는 26살 어린 사촌 동생이다.
빈나예프 왕자의 아버지 나예프 빈압둘아지즈 전 왕세자가 즉위를 앞두고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그의 작은아버지 살만 국왕이 2015년 서거한 압둘라 국왕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사우디 소식통들에 따르면 살만 국왕은 지난달 제2왕위계승자 겸 국방장관이었던 빈살만 왕세자를 제1왕위계승자로 책봉한다는 칙령을 발표하기 전날 저녁인 지난달 20일, 빈나예프 왕자를 메카의 왕궁으로 불렀다.
이 만남에서 살만 국왕은 빈나예프 왕자에게 왕세자 자리에서 내려올 것을 요구했다.
이를 거부한 빈나예프 왕자는 이후 다른 방으로 옮겨져 휴대전화를 빼앗기고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밤을 보내야 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그 사이, 사우디 왕족 원로들로 구성된 왕위계승위원회 위원들은 빈살만 왕세자의 측근들이 작성한 살만 국왕 명의의 서신을 통해 빈나예프 왕자가 약물중독 증세로 왕위를 계승할 수 없어 왕세자 교체를 해야 한다는 동의를 구하는 연락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들에 따르면 빈나예프 왕자는 사우디의 대테러 체계 설계자로 꼽힐 만큼 대테러 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왔다.
이 때문에 그에 대한 테러 조직의 암살 시도가 4차례나 있었는데 지난 2009년 예멘 알카에다의 자살폭탄 테러로 다친 후 통증에 시달리면서 진통제를 복용해왔다고 빈나예프 왕자의 측근들은 전했다.
그러나 살만 국왕 측이 제시한 약물중독은 왕세자 교체를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소식통들은 주장했다.
실제로 빈살만 왕세자를 후계자로 책봉하기 위한 준비는 이미 지난 2015년부터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는 게 사우디 소식통과 미 정보당국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살만 국왕은 2015년 1월 즉위한 뒤 내각 주요 고위직에 40∼50대의 빈살만 왕자 측근을 임명하고 국방장관과 경제·개발위원회 위원장직에 유임시키며 사실상 차기 국왕 승계를 위한 구도를 설계했다는 것이다.
당뇨를 앓는 빈나예프 왕자는 결국 외부와 단절된 채 뜬눈으로 밤을 보내다 자신이 사면초가에 처했음을 받아들이고 결국 이튿날 왕세자 지위를 포기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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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왕실은 왕세자 교체 소식을 발표하면서 미리 준비된 방송용 카메라를 통해 전·현 왕세자가 덕담을 나누는 모습을 세계로 내보냈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은 당시 왕위계승위원회 위원 34명 중 31명이 왕세자 교체를 승낙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NYT에 따르면 빈살만 왕세자에 대한 사우디 왕실의 지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왕실 내부에서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빈나예프 왕자의 측근들은 그가 가족과 함께 스위스나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의사를 내비쳤지만 사우디 왕실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mong07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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