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 가격 부풀리기 경쟁으로 천정부지…실제 계약률은 10%
강원도·조직위, 9∼10월 가격안정 예상…배후도시로 분산 유도
(평창·강릉=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몇 명이세요? 며칠간 묵으실건데요? 가격은 어느 정도 생각하시는 데요?"
내년 2월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 숙박을 위해 강릉의 한 모텔로 들어가 묻자 직원은 조건 반사적으로 몇 가지를 물었다.
분명 프런트에는 모텔에서 책정한 비수기와 성수기 가격표가 있었으나 이는 가볍게 무시됐고, 네고(Negotiation, 협상)가 이어졌지만 길지 않았다.
모텔 측에서 1박에 40만원을 불렀기 때문이다. 침대 하나에 단 두 명만 사용하는 조건이다.
바다가 보이는 객실의 성수기 요금이 15만원∼20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곱절이 넘는 값이다.
강릉과 평창지역의 올림픽경기장 인근 모텔과 펜션 등 30여 곳을 종일 돌아다닌 결과 이들이 최우선으로 계약하는 요구조건은 이랬다.
우선 적어도 2월 내내 사용해야 하고, 될 수 있으면 객실 전체를 계약하는 조건이다.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면 금상첨화다.
기간과 인원이 줄어들면 값은 1박에 최대 70만원까지 오른다. 두 가지 중 한 가지는 고집하는 곳이 많아 소규모 또는 단기 관광객 조건으로는 명함도 내밀기 어려웠다.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일대는 리(里)라는 행정구역 단위가 말해주듯 조그마한 산골 동네로 숙박업소 선택지도 몇 없었다.
강릉과 평창지역의 숙박요금이 천정부지로 오른 이유는 '여행사들의 경쟁적인 숙박업소 계약' 때문이다.
1년, 아니 그 이전부터 여행사 관계자들은 수시로 찾아와 "올림픽 기간 내내 1박에 40만원∼50만원은 받을 수 있으니 우리와 계약하지 않겠느냐"고 마구 제시해댔다.
숙박업소에 이 정도 요금을 준다면 여행사는 관광객에게 60∼70만원까지 받는다는 얘기지만 이는 업주들의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성수기 가격보다 곱절이나 되는 돈을 한 달 내내 받을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아쉬운 건 여행사를 통해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직접 발품을 판다면 여행사를 통한 계약보다는 싸겠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이 그런 수고를 할 리가 없다.
결국, 업주 입장에서는 반드시 경기장 근처에서 묵어야 할 수요가 있고 후한 값을 받을 수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소규모나 단기 체류 관광객에 아쉬운 소리 할 필요도 없다.
평창 횡계리의 한 호텔 업주는 "처음에는 '이렇게 받아도 되나?' 싶었는데 다른 올림픽 개최지역에서도 다 그렇게 받았다고 하고, 일부는 벌써 비싸게 계약까지 했다고 하니 기왕이면 좋은 조건에 계약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숙박업주들이 만나서 커피 한잔 마신 적 없지만, 여행사에서 잔뜩 부풀린 가격에 업주들의 기대심리도 오르면서 시세는 높은 가격에 형성됐다.
호텔 가격비교사이트에서 동계올림픽 기간 이들 지역의 숙박업소를 검색하자 평창의 한 펜션의 2인실 1박 요금이 100만원에 올라있었다. 6인실은 심지어 450만원으로 내놨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봤을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림픽 기간 아파트 임대계약까지 성행하고 있다.
하지만 강원도에 따르면 정작 개최지역의 숙박업체 실제 계약률은 10% 정도다.
여행사들이 찔러보기만 하고 계약하지 않은 것이 상당수라는 얘기다.
업주들도 개최까지 200일이 남아 있어 더 좋은 조건이 나타나지 않을까 가계약만 해둔 채 눈치를 보고 있다.
도와 조직위가 예상하는 평창동계올림픽 때 1일 최대 관람객 숫자는 10만4천여명이다.
이 중 60%가량이 숙박할 것으로 보여 3만실이 필요하다.
조직위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경기연맹(IF), 국가올림픽위원회(NOC) 등 클라이언트와 대회운영인력을 위해 확보한 숙박시설을 제외하면 관광객에게 공급 가능한 숙박시설은 3천484개소 4만2천984실이다.
조직위가 확보한 물량은 대부분이 개최지역에 있는 양질의 숙박시설이다. 유치 당시 IOC와 약속한 내용이기에 반드시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관광객은 주로 개최지역 모텔이나 펜션 또는 속초, 고성, 양양, 삼척, 원주 등 배후 지역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도 역시 관광객을 개최지역에만 묶어두기보단 배후 지역으로 분산시켜 다양한 관광상품을 소개하고 '다시 찾는 강원도'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최근 한국관광공사, 동계올림픽조직위, 올림픽 개최 시·군, 관광업체 등과 제2차 관광올림픽 종합대책회의를 열어 올림픽을 활용한 관광상품을 만들기 위한 기관별 추진상황을 점검하고 앞으로 공동 협업 마케팅 방향 등 폭넓은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개최도시와 배후도시의 접근성도 높일 계획이다.
도는 조직위에서 운영하는 평창, 강릉, 정선 셔틀버스 외에 배후도시에서 개최도시까지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각 시·군은 지역 내 셔틀버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숙박요금도 배후 지역으로 눈을 돌리면 1박에 10만원으로 크게 내려간다.
도는 각 시·군, 숙박업계와도 합리적인 숙박요금 형성도 유도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도 숙박요금이 안정될지는 미지수다.
도와 조직위는 조직위가 확보한 물량 중 남는 물량이 시장에 풀리는 9∼10월이면 가격이 자연스럽게 조정돼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지만, 업주들이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강제로 규제할 수도 없다.
호텔과 달리 모텔과 펜션은 등급을 매길 수도 없고, 이미 모텔에서 호텔로 바꾸는 등 시설 투자한 곳도 있어 반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때문에 터무니없는 가격만 고집하다간 되레 공실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도 관계자는 "숙박협회와 업주들이 올림픽 특수보다는 올림픽 이후를 위한 합리적인 가격 형성에 동참하려 하고, 수도권 이탈 등으로 인한 공실 발생 우려에 공감하고 있어 합리적인 수준으로 결정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conan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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