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미국의 북한 여행 금지와 대북 정책 조절

입력 2017-07-23 18:27  

[연합시론] 미국의 북한 여행 금지와 대북 정책 조절

(서울=연합뉴스) 미국 국무부가 모든 미국 시민의 북한 여행을 전면 금지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북한의 법 집행 체계에서 심각한 체포 위험과 장기간 구금에 대한 우려가 증가함에 따라" 미국 시민권자의 북한 경유나 입국을 금지하는 '지리적 여행규제'를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는 금주 중 관보에 게재되고 8월 말부터 발효된다. 그렇게 되면 일반 미국 여권을 갖고는 북한을 경유하거나 입국할 수 없게 되며 인도적 목적으로 방문하려 할 때도 당국의 특별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북한에 17개월간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풀려난 지 엿새 만에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미국인의 북한 여행을 아예 차단해 제2의 웜비어 사건을 막고, 미국 시민권자를 터무니없는 이유로 억류해 협상 카드로 쓰는 북한의 '인질외교'를 더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 방문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여행 자제를 권고했지만 시민 기본권인 여행의 자유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북한 방문 자체를 막지는 않았다. 과거에도 이란, 쿠바, 북베트남 등 미국에 적대적이던 몇몇 나라에 대해 여행금지 조치를 한 적이 있지만 모두 해제해 현재는 어떤 나라도 여행금지 대상에 올라있지 않다. 이번 조치가 발효되면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북한만 미국의 여행금지 지역이 된다. 웜비어 사건으로 북한에 대한 여론이 크게 악화하기는 했으나 미 행정부로서는 이례적으로 강력한 조처를 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는 웜비어 사건을 넘어 북한이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시험발사로 미국 본토까지 위협하면서 미국 내에서 대북압박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미국은 북한의 ICBM급 도발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를 추진 중이며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독자 제재에 나서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발언 수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조지프 던퍼드 미국 합참의장은 22일 아스펜 안보포럼에서 "많은 사람이 대북 군사옵션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해왔지만 그런 견해를 약간 바꿔야 할 것 같다"면서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상황 가능성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북한을 방문하는 미국인은 연간 수백 명 정도로 알려졌다. 따라서 미 국무부의 여행금지 조치가 당장 북한의 외화수입을 크게 줄이거나 경제에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북한 전문가들 전망이다. 서방국가들도 미국과 비슷한 조치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경제제재 효과를 기대할 만한 규모에 이르지는 못할 것 같다. 다만 미국의 유일한 여행금지 지역이라는 '낙인'으로 북한의 국제적 고립이 더 심화할 수 있다. 북한 여행금지의 직접적 효과보다 이 조치가 갖는 상징적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특히 북한에 대한 미국의 결연한 의지를 내보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 행정부가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온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번 북한 여행금지 조치도 그런 분위기에서 취해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우리 외교·안보 당국도 이런 미국의 기류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다음에는 더 강한 대북제재 조치를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북 정책의 주도권을 우리가 갖는다는 것에 동의했지만 너무 두드러지게 서로 엇박자가 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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