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플레이어블 13번홀서 족집게 조언으로 보기
"넌 마이클 조던·펠프스의 친구" 용기 충전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조던 스피스(미국)는 메이저 대회 디 오픈(브리티시 오픈) 우승 인터뷰를 마친 직후 우승 트로피 '클라레 저그'를 캐디 마이클 그렐러에게 안겼다.
그렐러는 스피스의 캐디 그 이상이다. 동반자이자 환상의 짝꿍의 면모를 디 오픈에서도 발휘했다.
24일(한국시간) 영국 사우스포트의 로열 버크데일 골프클럽(파70·7천156야드)에서 열린 제146회 디 오픈 최종 4라운드에서 스피스는 그렐러에게 특별히 고마워해야 할 일이 여러 번 있었다.
13번 홀(파4)에서 스피스는 최대 위기에 빠졌다.
티샷부터 '최악'이었다. 페어웨이 오른쪽으로 날아간 공은 갤러리를 훌쩍 넘어 경사면 수풀에 박혔다. 스피스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스피스는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했다. 1벌타를 받은 후 공이 있던 곳과 홀을 직선으로 연결한 선상의 후방으로 공을 옮겼다.
후방에는 그러나 방송중계를 위한 투어 밴이 있어 칠 수 없었다. 타이틀리스트 로고가 크게 박힌 트럭이 타이틀리스트 후원을 받는 스피스를 가로막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스피스는 투어 밴 뒤로 한참을 더 옮겼다.
더 큰 문제는 그 지점에서 홀까지의 거리를 가늠할 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스피스 앞에는 언덕이 솟아 있었다.
스피스는 3번 우드를 사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렐러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렐러는 3번 아이언을 쓸 것을 권유했다. 스피스는 아이언을 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 샷을 날렸다. 공은 그린 근처에 안전하게 떨어졌다.
갤러리의 환호 속에서 스피스는 13번 홀을 보기로 선방할 수 있었다. 스피스와 그렐러는 21분의 사투 끝에 위기에서 탈출했다.
골프다이제스트에 따르면, 그렐러는 "(세 번째 샷을 할 때 홀까지의 거리를) 스피스는 270야드, 나는 230야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걱정스러웠다"고 돌아봤다.
이어 "정말 최고였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명장면이다.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스피스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렐러의 의견을 받아들인 이유를 설명했다.
스피스는 "나와 그렐러 중 누구의 거리 계산이 더 정확한지 묻는다면, 보통은 나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렐러는 아주 확신에 차 있었다. 어떤 클럽으로 쳐야 할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이 모습은 나에게 자신감을 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옳았다"고 강조했다.
그렐러는 이날 스피스의 '멘탈 코치' 역할도 했다.
단독 선두로 4라운드를 출발한 스피스였지만, 그는 우승을 눈앞에 두고 유난히 롤러코스터 같은 기복을 보였다.
1번 홀(파4)부터 보기를 적어냈다. 그렐러는 "이겨내"라고 격려했다.
3번 홀(파4)과 4번 홀(파3)에서 연속 보기를 친 스피스가 5번 홀(파4)에서 버디에 성공했을 때, 그렐러는 스피스의 클럽을 돌려받기를 거부했다. 스피스가 자신과 주먹을 마주치는 '세리머니'를 한 후에야 그렐러는 클럽을 받아 가방 안에 넣었다.
7번 홀(파3)에서는 스피스에게 잠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스피스는 지난주 농구 전설 마이클 조던,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와 함께 멕시코 카보 산 루카스로 여행을 즐긴 바 있다.
그렐러는 "지난주 너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 기억나? 너는 그들의 친구야"라고 말하며 자신감을 채워줬다.
이후 스피스는 13번 홀에서 최대 위기에 몰리고도 그렐러 덕분에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완전히 자신감을 회복한 스피스는 14번 홀(파3) 버디, 15번 홀(파5) 이글, 16번 홀(파4) 버디, 17번 홀(파5) 버디로 급상승세를 타 디 오픈 정상에 올랐다.
최종합계 12언더파 268타로, 2위 맷 쿠처(미국)를 3타 차로 제치고 클라레 저그를 들었다.
그렐러는 대회가 끝나고서야 "오늘 온종일 감정들과 싸움을 벌였다.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계속 되뇌었다. 스피스가 평정심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안도했다.
종종 파트 타임 캐디로 활동하던 학교 수학 선생님이던 그렐러는 2010년 주니어 아마추어 골퍼이던 스피스의 임시 캐디를 맡았다. 이때 둘을 연결해준 사람은 바로 저스틴 토머스(미국)다.
스피스는 2012년 프로로 전향할 때 그렐러를 다시 찾아가 풀타임 캐디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렐러는 수학 교사를 그만두고 스피스의 캐디 백을 멨다.
그리고 2015년 마스터스 토너먼트와 US오픈에 이어 디 오픈까지 스피스의 세 번의 메이저 우승을 합작한 캐디 명인으로 자리 잡았다.
abbi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