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두 번째 시집 '유리구슬마다 꿈으로 서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시상들을 시로 만드는 과정에서 주로 쓰는 방법은 블록놀이입니다. 처음에는 일반시로 쓰기도 하고 큰 주제를 정해서 연작시로 쓰기도 해요. 그렇게 써놓은 시들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어설픈 부분들이 보이는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때까지 써놨던 모든 시를 이미지 단위로 해체한 후 새로 정한 제목에 맞춰서 다시 쌓는 거죠. '딸까닥' 하고 들어맞는 소리가 날 때까지요."
시인 김민(49)이 두 번째 시집 '유리구슬마다 꿈으로 서다'(문학세계사)를 냈다. "어떤 보이지 않는 눈에 우리 또한 아름다울 수 있을까"('자벌레' 전문) 2001년 등단 때부터 시인은 줄곧 한 줄로 된 시를 써왔다. 첫 시집 '길에서 만난 나무늘보'(2007)는 86편 모두 '한줄시'였다. 이번 시집도 하나의 이미지를 한 행에 담은 함축적인 시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바람 허무는 아이 무릎 감싸 주던 땅거미"('두껍아 두껍아' 전문) 시인은 술래잡기와 공기놀이·숨바꼭질같이 요즘은 구경하기 힘든 옛 아이들 놀잇감을 통해 어린 시절 기억을 불러들인다. 시선에는 그리움과 상실감이 두드러진다.
"모퉁이 돌아보면 앞니 빠진 유년들도 걸려 있을 것만 같습니다"('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전문)
"세상 모든 저물녘은 어머니와 헤어진 시절"('하굣길' 전문)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 뇌성마비 장애를 안고 살아왔다. 그런 '질긴 상처'가 시인의 시선을 유년 시절의 상실감에 붙잡아뒀는지 모른다. 시인이 이메일을 통해 말했다.
"잘 걷질 못해서 툭하면 넘어지는 게 일상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무릎에 딱지가 사라질 날이 없었죠. 어떤 때는 딱지 앉은 무릎이 또 깨지기도 했는데 아무도 없는 마당에 주저앉아 흙 묻은 무릎을 움켜쥐고 있다가 배어 나오던 피와 하늘에 지던 노을을 번갈아 보며 서러운 마음이 들어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이미지는 아직도 아무리 해봐도 시로 써지질 않고 있네요."
시인은 두 번째 시집에서 여러 행으로 된 시를 비롯해 새로운 시도를 했다. 어머니와 아이의 대화 형식인 '심부름하는 아이'에서는 동화적이면서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이 엿보인다.
"이제부터는 네가 찜솥을 맡아도 되겠구나/ 뚜껑은 찾았니, 얘야// 이제 뚜껑은 찾을 필요 없어요/ 제 몸을 통째로 넣을 거니까요// 곰쥐 떼가 몰려오고 있질 않니// 곰쥐는 저처럼 질긴 상처는 먹지 않는대요/ 그러니 아무 걱정 마세요/ 어머니"('심부름하는 아이' 부분)
처음부터 작정하고 한 줄로 쓰는 경우는 드물다. 여러 각도에서 해체하는 작업 끝에 살아남은 시들이다. 시인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애착이 가는 '일반시'들이기도 하다. 일부러 변화를 시도해서 쓴 것이 아니라 무수한 변화를 시도하던 중에 끝까지 버틴 시들"이라고 말했다.
김민 시인은 큰아버지인 시인 김수영(1921∼1968)이 작고하고 넉 달 뒤 태어났다. 어린 시절 큰아버지 시집을 읽으며 시심을 키웠고 김수영 시비(詩碑)가 있던 뒷산에 올라가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시 쓰는 데 있어서 큰아버지의 '벽'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시창작 쪽으로 보더라도 저는 이미지 시풍을 좋아해서 큰아버지와는 아예 방향이 다르다 보니 부담 같은 건 느끼지 않았어요."
이미지나 해체시를 좋아하던 때가 대학 시절이었다. 졸업을 하고서는 감상적인 시를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0년께 "이미지이면서 군더더기 없는 시"가 정말 쓰고 싶은 시라는 걸 깨달았고 이듬해 등단했다. 시인은 한줄시를 "낱말로 그린 그림"이라고도 했다.
"한줄시는 구구절절 설명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림과 일맥상통합니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이룰 수 없었던 꿈을 시의 형태로 이루고 있는 듯한 것도 한줄시를 쓰고 있는 이유 중 하나겠지요."
김수영은 생전에 이렇게 썼다. "거짓말이 없다는 것은 현대성보다도 사상보다도 백배나 더 중요한 일이다." 김민의 시론도 마찬가지다. "제가 시를 계속 쓰는 한, '거짓이 없는 시를 쓰는 거예요. 형식이나 내용은 그 다음의 문제인 것이죠. 저만의 시론 또한 '거짓이 없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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