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이 회고하는 장욱진…인사아트센터서 탄생 100년 기념전
"파울 클레와 비교하자 그리던 그림 지우시기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모더니즘이니 무엇이니 미술사조가 막 들어오는데 혼자 이 그림을 그리고 계셨을 아버지를 상상합니다. 굉장히 고독한 싸움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화가 장욱진(1917~1990) 맏딸인 장경수(72) 경운박물관장의 발걸음이 자그마한 유화 한 점 앞에 멈춰 섰다.
한 붓으로 그은 산과 물 사이에 떼 지어 날아가는 새 네 마리, 어부 한 사람을 그려 넣은 '어부'(1968)다. 장욱진이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덕소(지금 경기도 남양주시) 집에서 혼자 지내던 시절 작품이다. 서울대 교수도 6년 만에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겠다며 시골로 내려간 장욱진은 술로 시간을 보낼 때가 더 많았다.
"내려가 보면 아버지가 술만 잡숫고 계세요. 그러면서 '너는 뭐냐, 나는 뭐냐'라는 말을 반복하세요. 대학생이었던 제가 '아버지가 소크라테스냐'라면서 따지기도 했어요. 돌이켜 보면 아버지가 자기 '아이덴티티'를 찾느라 그랬던 것이죠."
장욱진은 서구 미술사조가 밀려오던 때 추상 작업을 시도하는 등 변신을 꾀하기도 했으나 결국 본래의 '아이덴티티'를 찾아 돌아왔다. 산과 강, 나무, 새, 원두막, 길, 아이 등을 소박하면서도 간결하게 그려낸 따뜻한 그림들이 그렇게 탄생했다.
한국적 정서를 현대적 미감으로 소화해 독자적 화풍을 확립했던 장욱진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작품 세계를 돌아보는 특별전 '장욱진 백 년-인사동 라인에 서다'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은 24일 간담회에서 "장욱진 그림의 미덕은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보여준다"면서 "농경 시대의 목가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람의 완성은 자연과 하나 되는 경지에 있다는 것을 앞서 그려 보여준다"고 평했다.
전시는 덕소 시절(1963~1975), 명륜동 시절(1975~1979), 수안보 시절(1980~1985), 신갈 시절(1986~199) 순으로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어 일반에 좀처럼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는 점에서 올해 곳곳에서 열리는 장욱진 전시 중에서 더 주목할 만하다. 일례로 덕소 시절 그린 유화 '나무와 새와 모자'(1973)는 미국에 있다가 최근 국내로 들어와 유족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작품이다.
작가 대표작 중 하나인 '진진묘'(1970)도 한쪽에 전시됐다. 불심이 깊었던 아내를 그린 작품이다.
장 관장은 "불경 읽는 어머니를 본 뒤 일주일간 작업에 열중했던 아버지가 '진진묘'를 완성하고 쓰러졌다"면서 "'(남편과) 인연이 끝나려나'라는 생각도 하셨다는 어머니는 그래서 이 작품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올해 경매에서 작가 최고가를 경신한 초기 회화 '독'(1949)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 중이나 전시에는 나오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김 이사장은 "장욱진 탄생 100주년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려야 마땅했다. 지난해 이중섭, 유영국, 변월룡 100주년 전시가 열렸음에도 올해 장욱진 전시는 빠졌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장 관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예민한 눈을 가졌던" 아버지의 예술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보여주는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어느 누군가 파울 클레(독일 화가)와 닮았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하니 아버지가 싫어하시면서 그리던 그림을 홀딱 지워버리셨어요. 그래서 다시는 파울 클레와 비교하는 이야기를 안 했어요."
이번 전시 제목을 '인사동 라인에 서다'로 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장 관장은 약간의 웃음 섞인 한숨과 함께 "인사동이 아버지의 술 골목이었어요. 이 골목에 가서 한 잔, 저 골목에 가서 한 잔"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8월 27일까지. 문의 ☎ 02-73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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